건저문제

건저문제

[ 建儲問題 ]

요약 1591년(선조 24)에 왕세자 책봉문제로 동인과 서인 사이에 일어난 분쟁.

선조의 정비(正妃)에게는 아들이 없고, 후궁이 낳은 왕자만 여럿 있어 왕세자 책립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서인에 속한 좌의정 정철(鄭澈) 등은 정비 소생은 없는데 후궁 소생이 많음으로써 일어날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왕자 중에서 한 사람을 왕세자로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인(東人)인 영의정 이산해(李山海), 우의정 류성룡(柳成龍), 부제학 이성중(李誠中), 대사간 이해수(李海壽) 등과 서로 의논하여 왕세자 책봉 문제를 선조에게 건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산해는 그 약속을 어기고, 선조가 특히 사랑했던 후궁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오빠 김공량(金公諒)과 결탁하여, 인빈에게는 정철이 왕세자 책봉을 청하면서 인빈이 낳은 왕자인 신성군(信城君) 후(珝)를 죽이려 한다고 모함하였다. 인빈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선조는 크게 노하여 정철 등이 왕세자 책봉 문제를 건의하자 정철의 벼슬을 깎고, 윤두수(尹斗壽)·윤근수(尹根壽)·백유성(白惟成)·유공진(柳拱辰) 등 서인을 모두 외직(外職)으로 쫓아버렸다. 동인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으로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정철에게 원한을 품어, 건저문제를 서인에 대한 보복수단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기축옥사 때는 이발(李潑)을 비롯한 많은 동인들이 고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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