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목대비

인목대비

[ 仁穆大妃 ]

요약 조선 제14대 왕 선조의 계비. 19세에 왕비가 되었으며 영창대군을 낳았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아들 영창대군과 부친 김제남이 사사되고 폐서인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었다.
출생-사망 1584 ~ 1632
본관 연안(延安)
별칭 존호 소성정의명렬(昭聖貞懿明烈), 휘호(徽號) 광숙장정(光淑莊定)

본관 연안(延安). 성 김씨(金氏). 존호 소성정의명렬(昭聖貞懿明烈). 휘호(徽號) 광숙장정(光淑莊定). 제남(悌南)의 딸,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어머니이다. 1602년(선조 35) 왕비에 책봉되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광해군 대신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던 소북(小北)의 유영경(柳永慶) 일파가 몰락하고 대북(大北)의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이 득세하였다. 정인홍을 중심으로 인목대비의 폐모론이 주창되었고 이이첨, 허균 등이 적극 주장하였다. 1612년(광해군4) 이들의 사주를 받은 윤인(尹訒)에 의해 살해될 뻔했으나 박승종(朴承宗)의 저지로 목숨을 보전하였다. 1613년 대북파의 모략으로 어린 영창대군이 강화도로 유배되었으며, 친정 아버지 김제남 등이 사사(賜死)되고, 1618년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 대북파는 폐모정청(廢母庭請)사건을 일으켜 왕대비(王大妃)로서의 지위를 위협하다가 1623년 서인(西人)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과 대북 일파를 몰아내자 복호(復號)되어 대왕대비(大王大妃)로서 인경궁(仁慶宮) 흠명전(欽明殿)을 거처로 삼았다. 글씨를 잘 썼다. 능은 경기 구리시 인창동의 목릉(穆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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