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정

이광정

[ 李光庭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고 심유경을 도와 일본과 협상하였으며,  선조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출생-사망 1552 ~ 1627
본관 연안
덕휘
해고·눌옹
활동분야 정치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휘(德輝), 호는 해고(海皐)이다. 정언을 지낸 이주(李澍)의 아들이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0년(선조 23) 교관(敎官)으로 있으면서 증광문과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정자·사관·시강원설서를 역임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이후 정언(正言)·예조좌랑(禮曹佐郞)·병조좌랑·동부승지·이조참의·예조참의·병조참의·좌승지 등 정부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대사성이 되었다.

1597년에는 명나라 사신 심유경(沈惟敬)의 접반사가 되어 일본과의 회담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고, 1598년에는 명나라 제독 마귀(麻貴)와 함께 울산에 내려가 왜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이듬해 호조판서·공조판서·한성부윤을 지냈고, 1601년에는 지중추부사로 청백리에 선발되었다.

1602년 대사헌 때 인목대비의 책봉에 대한 고명을 받기 위해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를 다녀왔으며,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연원군(延原君)에 봉해졌고, 이어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부원군(府院君)에 진봉(進封)되었다. 1626년(인조 4)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가 되었으나 이듬해 정묘호란 때 강화(江華)에 들어가 병사했다.

참조항목

임진왜란, 청백리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