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경

심유경

[ 沈惟敬 ]

요약 임진왜란 때의 조선에서 활약한 명나라 사신으로 평양성에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만나 화평을 협상하였다. 1596년 일본에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 협상을 진행하였으나 매국노로 몰려 처형되었다.
출생-사망 ? ~ 1597
국적 중국 명(明)
출생지 중국 저장성[浙江省] 자싱[嘉興]

나라의 사신으로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출생하였다. 명나라에서 상인으로 활동하였다가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승훈(祖承訓)이 이끄는 명나라 군대를 따라 조선에 들어왔다. 평양성 전투에서 명나라 군이 일본군에게 대패하자 일본과의 화평을 꾀하는데 역할을 하였다. 평양성에서 신기삼영유격장군(神機三英遊擊將軍)의 신분으로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만나 화평 협상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서 일본군도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궁지에 몰리가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남해 재해권 장악으로 일본으로 부터 보급도 어려워졌다. 이듬해 협상을 재차 진행하였지만 여전히 양측이 제시한 협상조건은 타협이 불가능하였다.

일본의 조건은

1. 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을 삼는다.

2. 무역증서제를 부활한다.

3. 일본과 명나라 양국 대신이 각서를 교환한다.

4. 조선8도 가운데 4도를 일본에 이양한다.

5. 조선의 왕자와 신하를 볼모로 일본에 보낸다.

6. 포로로 잡고 있는 조선의 두 왕자를 석방한다.

7. 조선의 권신이 일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명나라의 조건은

1. 조선에서 완전히 물러갈 것.

2. 조선의 두 왕자를 송환할 것.

3.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번 전쟁을 공식적으로 사죄할 것.

심유경은 두나라의 상반된 협상조건을 무시하고 명나라 황제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국왕으로 책봉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된다면 신하로서 조공을 바치겠다"는 내용으로 조작 변경하여 명나라 황제로 부터 협상을 허락받았다. 심유경은 명나라 황제가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일본 국왕 책봉 국서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나고야성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만나게 된다. 국서를 받은 히데요시는 격분하였고 명나라와 일본 양국 사이에 심각한 불신만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된다. 화평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1597년 다시 조선으로 출병하여 정유재란이 발발하였다. 정유재란은 명나라로 쳐들어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선의 남부지방을 침탈하는 목적이었다. 심유경은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고 또다시 일본과 평화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이것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을 기도하였다가 경상남도 의령 부근에서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에게 붙잡혀 처형되고 말았다.

역참조항목

성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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