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민

성이민

[ 成以敏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관리인 진운홍과 심유경의 접반관이 되어 활약하였으나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여 유배되었다. 이후 공조정랑·한산군수·분병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문집으로 《삼고당집》이 있다.
출생-사망 1565 ~ ?
본관 창녕(昌寧)
퇴보(退甫)
삼고당(三古堂)·천유(天遊)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삼고당집》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퇴보(退甫)이고 호는 삼고당(三古堂)·천유(天遊)이다. 1595년(선조 28)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이듬해 호조좌랑으로 있으면서 명나라 관리를 접대하는 접반관(接伴官)으로 활약하였다. 당시는 임진왜란 때라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관리가 많았는데, 그가 맡은 사람은 진운홍(陳雲鴻)과 심유경(沈惟敬)이었다. 진운홍의 접반관 때는 신중하지 못한 보고로 물의를 빚었고, 심유경의 접반관으로 있을 때는 일본군 진지에서 도망쳐 나온 죄로 유배되었다.

이 일로 전란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벼슬에 오르지 못하다가 1606년(선조 39)에야 공조정랑에 올랐다. 이듬해 한산군수(韓山郡守)로 부임하였으며, 광해군 때인 1617년 분병조좌랑에 올랐다. 1618년(광해군 10)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갈 예정이었지만 예전에 접반관으로 있을 때 일본군 진지에서 도망한 일로 취소되었다. 문집으로 《삼고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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