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다호리 고분군

창원 다호리 고분군

[ Ancient Tombs in Daho-ri, Changwon , 昌原 茶戶里 古墳 ]

요약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 일대에 위치한 원삼국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분묘유적. 1988년 9월 3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창원 다호리 고분군

창원 다호리 고분군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1988년 9월 3일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 237-3번지
시대 고대국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1988년 9월 3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낙동강의 남안에서 2km 정도 떨어진 야산에서 평지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을 따라 밀집분포되어 있다. 이 일대에는 가야고분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다호리 가야고분군의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다호리 야산 일대가 삼국시대 초기 이래 가야시대까지 계속해서 주요 매장지로 선정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은 원삼국시대 중 가장 빠른 유적으로 1988년 발견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연차적으로 조사되었는데, 6차에 걸쳐 나무널무덤[木棺墓] 44기, 이음독무덤[合口式甕棺墓] 5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특히 1호분에서는 거의 완전한 모습의 통나무관과 많은 껴묻거리가 출토되어 당시의 문화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이 나무널은 길이 240cm, 너비 85cm, 지름 65cm 크기로서 굵은 통나무를 길게 반으로 잘라 그 내부를 파낸 뒤 각각 관의 덮개 부분과 몸통 부분으로 사용하였다. 운반을 위하여 널의 양 측면에 4개의 운반형 고리구멍을 관통시키고 움구덩이 안에 안치시는 굵은 밧줄을 이용하였다. 널 아래에는 한가운데 별도의 껴묻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각종 유물이 담겨진 대바구니를 부장하였다. 기타 껴묻거리로는 칠기류 ·목기류 ·철기류 ·토기류 등이 관 바닥과 둘레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중 많은 철제유물이 주목되는데, 출토된 철기의 수량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그 종류도 검 ·과(戈) ·모(鉾) ·촉(鏃) ·도끼 ·낫 ·따비 등 무기류와 일반 농공구류에까지 미쳐 이 시기에 이미 철기류가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철기들은 대부분이 한국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형태가 독특하고 단조 ·주조품이 모두 보이고 있어 철기제작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철제도끼 중 판상철부(板狀鐵斧)는 원삼국시대 초기의 영남지역 철기를 대표할 수 있는 것으로 자루없이 목관 내부에 여러 점이 끈으로 묶여 껴묻혔거나 날을 세우지 않은 것도 있어 단순히 도끼 역할만이 아닌 철정(鐵鋌)과 같은 지금(地金) 역할도 하였을 것이다.

또한 완벽히 보존된 칠기 및 칠피(漆皮)만 남은 칠기 흔적이 다량 출토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의 칠기문화가 매우 독창적이며 한국식 동검문화의 전통 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종류로는 나무로 만든 각종 굽접시, 사족기(四足器), 덮개가 있는 통형기(筒形器), 합(盒) ·붓 ·부채 등이 있고, 토기에 직접 칠을 바른 것과 대바구니에 칠한 것 등 칠기의 종류 및 제작기법이 매우 다양하여 이 당시 이미 칠기가 널리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토기류는 후기 민무늬토기와 고식 와질토기(瓦質土器)가 동시에 출토되어 과도기적 양상을 띠고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에서 확인된 이 유적의 나무널무덤 ·독무덤군은 모두 원삼국시대 전기에 속하는 것들로 40기 이상이 지표에서 확인돼 집단매장묘역임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원삼국시대 전기 분묘유적으로는 최대규모이다. 이러한 규모로 보아 이 일대에는 대단위 집락(集落)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칠기로 검집을 한 동검 및 철검 ·철과(鐵戈) ·조합형우각형파수부호(組合形牛角形把手付壺) ·칠기굽접시 등의 유물은 물론 묘의 구조 및 껴묻거리의 껴묻기 방법에 이르기까지 한국식 동검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되어 영남지역의 원삼국문화가 앞 단계의 청동기문화와의 연속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김해지역보다 이 지역이 중심적인 위치를 갖지 않았을까도 생각되며, 이 정치세력은 철생산을 바탕으로 낙랑 ·왜 등과 활발한 교역을 하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유적의 연대는 1호분의 경우 출토된 성운경(星雲鏡)과 오수전(五銖錢)으로 보아 BC 1세기 후반에는 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그 밖의 분묘도 모두 기원 전후한 시기, 늦어도 AD 1세기대에는 조영되었다고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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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다호리고분군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일대 원삼국시대 분묘유적으로 사적 제327호이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