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안성
[ 尹安性 ]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1583년 복병장으로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명원의 종사관으로 출전하여 왜적과 싸웠다. 1615년 능창군 전(佺) 추대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출생-사망 | 1542 ~ 1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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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파평(坡平) |
자 | 계초(季初) |
호 | 의관(宜觀) |
활동분야 | 정치 |
주요작품 | 《의관유고집》 |
본관 파평(坡平). 자 계초(季初). 호 의관(宜觀). 1572년(선조 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3년 복병장(伏兵將)으로 여진족의 침입을 격퇴, 1589년 요직에 등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명원(金命元)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출전, 왜적과 싸웠다.
이어 안동판관 ·숙천부사를 지냈다. 1593년 전주부사 때 금산(錦山)에서 왜적을 막지 못하고, 전주의 관고(官庫)가 불탄 죄로 파직되었다. 충주목사로 등용된 뒤, 온성 ·회령의 부사 때는 선정을 베풀어, 1597년 표리(表裏)를 하사받고 가자(加資)되었다.
1599년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동부승지가 되었다. 1601년 우부승지에 이어 해주목사 등을 거쳐, 1610년 형조참판이 되었다. 1612년 양양부사 때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관련, 파직되었다. 1615년 능창군(陵昌君) 전(佺) 추대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문집에 《의관유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