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원

김명원

[ 金命元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정여립의 난을 수습한 공으로 평난공신 3등에 책록, 경림군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순검사가 되고, 이어 팔도 도원수로서 임진강방어전을 전개하여 적의 침공을 지연시켰다.
김명원선생묘

김명원선생묘

출생-사망 1534 ~ 1602
본관 경주
응순
주은
시호 충익

본관 경주. 자 응순(應順). 호 주은(酒隱). 시호 충익(忠翼). 승지 만균(萬鈞)의 아들. 이황(李滉)의 문인.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합격, 156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569년(선조 2) 종성부사가 되고, 내외직을 거쳐 1587년 좌참찬으로 의금부지사를 겸임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난을 수습한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에 책록, 경림군(慶林君)에 봉해졌다. 임진왜란 때 순검사(巡檢使)가 되고, 이어 팔도도원수로서 임진강방어전을 전개하여 적의 침공을 지연시켰다. 평양이 함락된 뒤 순안에 주둔, 행재소(行在所) 경비에 힘썼다. 이듬해 명나라 원병이 오자 장수들의 자문에 응하였고, 그 뒤 신병으로 원수직을 사직, 호조 ·예조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병조판서로서 유도대장(留都大將)을 겸임하고 좌찬성 ·이조판서 ·우의정을 거쳐, 1601년 부원군에 진봉되고 좌의정에 이르렀다. 유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병서(兵書) ·궁마(弓馬)에도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