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겸

심충겸

[ 沈忠謙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호조, 병조 참판으로 우빈객을 겸직, 1594년 병조판서에 올랐다. 1604년 호성공신 2등으로 청림군에 추봉되었다.
심충겸 신도비

심충겸 신도비

출생-사망 1545 ~ 1594
본관 청송(靑松)
공직(公直)
사양당(四養堂)
시호 충익(忠翼)
별칭 청림군(靑林君)
주요수상 호성공신 2등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는 공직(公直), 사양당(四養堂), 시호 충익(忠翼)이다.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심강(沈鋼)의 아들이며 심의겸(沈義謙)의 아우이자 명종비(明宗妃)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동생이다. 1572년(선조 5)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장원급제한 후 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병조참판(兵曹參判)으로 선조를 호종하여 의주로 피난할 것을 역설했고, 이어서 분조(分朝)를 설치한 세자(광해군) 호위의 명을 받아 성천(成川)에서 세자를 모시고 왜군을 방어하였다. 이듬해 호조 ·병조 참판으로 우빈객(右賓客)을 겸직하고 1594년 병조판서에 올랐다. 1604년 호성공신 2등으로 청림군(靑林君)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세자였던 광해군의 분조에 참여한 공로로 1613년(광해군 5) 위성 1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1575년(선조 8) 형 심의겸의 추천으로 이조정랑에 발탁되었으나, 과거에 심의겸에 의하여 이조정랑 임명이 순탄치 않았던 전 이조정랑 김효원의 반대로 이조정랑에 임명되지 못하였다. 이 갈등으로 심의겸은 서인의 중심이 되고 김효원은 동인의 중심이 되어 각 인사들이 결집하면서 붕당이 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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