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

성영

[ 成泳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임진왜란 때 경기도순찰사로 왜적과 싸웠고 정유재란 때 군량을 조달했다. 선조 후반 소북의 영수 유영경의 측근으로 병조판서·이조판서 등 요직을 지냈다.
성영 신도비

성영 신도비

출생-사망 1547 ~ 1623
본관 창녕(昌寧)
사함(士涵)
우천(愚川)·태정(苔庭)
시호 양혜(襄惠)
국적 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는 사함(士涵), 는 우천(愚川)·태정(苔庭)이다. 중추부첨지사 성세평(成世平)의 아들이자 영의정 이양원(李陽元)의 사위이다.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 등을 지냈으며, 여주목사로 있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도 순찰사가 되어 왜적과 맞서 싸웠다.

1597년의 정유재란 때는 남정양향사(南征糧餉使)가 되어 군량미를 조달했으며, 1601년 한성부판윤에 올랐다. 1602년 중추부지사로 진하사(陳賀使)가 되어 나라를 다녀왔으며, 선조 때 후반에는 소북(小北)의 영수 유영경(柳永慶)의 측근으로 활약하면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 요직을 지냈다. 선조 때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기도 했으나,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정인홍(鄭仁弘) 등 대북세력에 의해 관직을 삭탈당하고 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 1616년 연일(延日: 경북 포항)에 유배되었으며, 1623년 유배지에서 죽었다. 인조반정 후 복관되었으며 시호는 양혜(襄惠)이다.

참조항목

정인홍

역참조항목

성영신도비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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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 신도비

성영 신도비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