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린

성석린

[ 成石璘 ]

요약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신돈과 대립했고 왜구가 침입하자 적을 격퇴했다. 이성계 등과 함께 공양왕을 내세웠고 조선이 개국하자 이색·우현보 일파로 추방되었다.
성석린선생 묘

성석린선생 묘

출생-사망 1338 ~ 1423
본관 창녕
자수
독곡
시호 문경

본관 창녕(昌寧). 자 자수(自修). 호 독곡(獨谷). 시호 문경(文景).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한 후 학유(學諭)·전리총랑(典理摠郞)을 지냈다. 신돈(辛旽)과 대립, 해주목사(海州牧使)로 좌천되고, 1384년(우왕 10) 왜구가 승천부(昇天府)에 침입하자 원수 양백연(楊伯淵)과 출전하여 적을 격퇴하고, 수성좌리공신(輸誠佐理功臣)이 되었다. 그후 양백연의 옥사에 연좌되어 함안(咸安)의 수졸(戍卒)로 충군(充軍)되었다가 풀려 창원군(昌原君)에 봉해졌다.

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공양왕을 내세운 공으로 찬화공신(贊化功臣)이 되고,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이색(李穡)·우현보(禹玄寶) 일파로 추방되었다. 그후 한성부판사(漢城府判事) 등을 거쳐 좌정승에 오르고,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3등으로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봉해진 후, 1415년 영의정이 되었다. 시문에 능하고 초서(草書)를 잘 써서 당대의 명필로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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