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조

성염조

[ 成念祖 ]

요약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개국공신이자 영의정인 성석린의 손자로 1423년 예조좌랑에 오른 것을 비롯하여 지평·집의·이조정랑·도승지·경상도관찰사·병조참판·형조참판·판한성부사·개성부유수·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출생-사망 1398 ~ 1450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자경(子敬)이고, 시호는 공혜(恭惠)이다. 개국공신이자 영의정인 석린(成石璘)의 손자이자 동지중추원사 엄(揜)의 아들이다. 1414년(태종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9년(세종 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23년(세종 5) 예조좌랑으로 있을 때 일본에서 사신을 보내어 예물을 바쳤을 때 그 답신을 썼다. 이듬해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직무를 유기하였다 하여 의금부의 탄핵을 받았다. 1428년(세종 10) 장령이 되고, 1433년 사헌부 집의가 되었다. 그해 부친의 병이 중해지자 병수발을 위하여 사직하였다.

1437년(세종 19) 동부승지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동전이나 종이돈 대신 포목을 쓸 것을 주장하였다. 이어 좌부승지를 거쳐 우승지에 임명되었다. 1440년 도승지에 제수되고, 1441년 이조참판에 올랐다. 그해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가서 신년을 하례하고 돌아왔다. 1442년(세종 24) 경상도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병으로 사직하였다. 이후 병조참판·형조참판·판한성부사·개성부유수·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참조항목

카테고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