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
[ 朴惺 ]
- 요약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활약했다. 공조좌랑(工曹佐郞) ·안양현감을 지냈다. 주요저서로 문집 《대암집》이 있다.
출생-사망 | 1549 ~ 16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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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밀양 |
자 | 덕응(德凝) |
호 | 대암(大菴) |
주요저서 | 《대암집》 |
본관 밀양. 자 덕응(德凝). 호 대암(大菴). 정구(鄭逑)의 문인. 배신(裵紳)에게 사사, 과거(科擧)에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 최영경(崔永慶) ·김면(金沔) ·장현광(張顯光) 등과 사귀었다. 정인홍(鄭仁弘)과도 친했으나 그가 대사헌에 올라 권세를 부려 절교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김성일(金誠一)의 참모로, 정유재란 때는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참모로 종군, 주왕산성(周王山城)의 대장으로 활약했다.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뒤에 사포(司圃)가 되고 이어 공조좌랑(工曹佐郞) ·안양현감을 지낸 후 모든 벼슬을 사퇴했다. 임진왜란 때의 활약이 《대암유사(大菴遺事)》에 실려 있다. 문집 《대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