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산문화

룽산문화

[ Longshan culture , 龍山文化 ]

요약 중국의 황허[黄河] 유역에서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존재했던 신석기시대 후기의 문화로서 흑도(黒陶)와 회도(灰陶)를 특징으로 한다.

중국 황허[黄河]의 중하류 지역에서 나타난 후기 신석기(新石器) 문화로서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무렵까지 존재하였다. 1928년 산둥성[山東省] 장추시[章丘市] 룽산전[龍山鎭] 청쯔야[城子崖]에서 맨처음 유적(遺蹟)이 발견되어 룽산문화[龍山文化]라고 명명(命名)되었다. 그리고 1931년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陽]의 허우강[後岡] 유적에서 양사오문화[仰韶文化]의 지층(地層)과 상(商) 시대의 문화층 사이에서 룽산문화[龍山文化]의 유적이 발견되어, 이 문화의 연대적 위치가 확인되었다.

룽산문화[龍山文化]는 마치 달걀껍질처럼 얇고 정교하게 제작된 흑도(黑陶)를 특징으로 하여, 채도(彩陶)를 특징으로 하는 양사오문화[仰韶文化]와 구분하여 ‘흑도문화(黑陶文化)’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룽산문화[龍山文化]는 하나의 계통이 아니라 허난[河南], 산시[陝西] 등의 중원(中原) 지역과 산둥[山東]에서 각기 다른 유형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다원커우문화[大汶口文化(대문구문화)]를 계승한 산둥[山東] 지역에서는 흑도(黒陶)가 발달하였지만, 양사오문화[仰韶文化]를 계승한 중원(中原) 지역에서는 회도(灰陶)가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특징에 근거해 룽산문화[龍山文化]는 크게 중원(中原)과 산둥[山東]의 룽산문화[龍山文化]로 구분되며, 중원(中原) 룽산문화[龍山文化]는 다시 지역에 따라 허난[河南], 산시[陝西], 진난위시[晋南豫西(진남예서)] 등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토기(土器)는 회도(灰陶)와 흑도(黑陶), 홍도(紅陶), 백도(白陶) 등이 다양하게 발견되는데, 물레의 사용이 보편화하여 토기 제작 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토기의 형태도 다양하게 발달하였으며, 꼰무늬[繩文], 람문(藍紋), 격자무늬[格字文], 덧무늬[隆起文] 등이 나타난다. 룽산문화[龍山文化]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흑도(黑陶)는 약 1000℃ 이상의 소성(燒成) 온도에서 제작되었으며, 표면은 무늬가 없는 단색이거나 검은색을 띠며, 윤이 나도록 갈아서 새알의 껍질처럼 얇고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흑도(黑陶)는 황허[黄河] 중류와 하류 지역인 산시[陝西], 허난[河南],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산둥[山東] 지역에서 폭넓게 발견되며, 양쯔강[揚子江] 하류와 랴오둥[遼東] 반도, 한반도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룽산문화[龍山文化]에서는 농업이 발달하였고, 도구의 종류와 숫자도 많아져 생산의 효율성도 크게 높아졌다.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반달형 돌칼[石刀]과 돌낫[石鎌] 등이 나타나며, 조개껍질로 칼이나 톱, 낫 등의 패기(貝器)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무덤에서 돼지의 머리뼈가 출토되는 경우가 많아 돼지 등의 가축 사육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수공업이 발달하여 정교한 옥기(玉器)가 생산되었고, 동(銅)의 합금(合金)과 제련(製鍊) 기술이 발달하여 후기에는 동기(銅器)의 제작과 사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식동물이나 거북 등의 뼈, 껍질 등을 불에 구워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치는 뼈점[骨占]이 행해졌으며, 제례[祭禮]를 올린 흔적도 나타난다. 주거지는 원형(圓形)과 방형(方形) 등의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며 반움집이 대부분이지만 지상가옥도 나타난다. 다진 흙이나 굽지 않은 흑벽돌 등을 재료로 집을 지었으며, 바닥이나 벽에는 석회(石灰)를 발랐다. 일부 지역에서는 성벽(城壁)을 쌓고 도시를 이루어 생활하기도 하였다. 모계(母系) 사회를 벗어나 부계(父系) 사회로 진입하였고, 사유재산이 출현하여 사회 내부의 빈부 격차와 계급의 분화가 뚜렷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