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튀르크전쟁

러시아-튀르크전쟁

[ Russo-Turkish Wars ]

요약 흑해에서 발칸반도·캅카스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동방정책이 일으킨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
언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어디서 발칸, 캅카스 등
누가 러시아
무엇을 오스만튀르크와 전쟁
어떻게 6차례에 걸쳐
동방정책

보통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에 걸쳐 벌어진 6회의 전쟁을 말한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흑해로 나가는 출구인 아조프를 둘러싸고 양국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여, 1637년에는 돈코사크에 의한 일시적인 아조프의 점령, 표트르 1세의 '아조프 원정(1695∼1696)'이 있었다. '북방전쟁' 중에 오스만 제국은 아조프를 탈환(1710)하였으나, 곧이어 '폴란드계승전쟁'과 관련해서 일어난 양국의 전쟁(1736∼1739)에서 러시아는 최종적으로 아조프를 확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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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전쟁(1768∼1774)

'제1차전쟁(1768∼1774)'은 러시아 세력의 폴란드 진출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가 튀르크를 사주하여 일으킨 전쟁이었으나, 이에 패배한 튀르크는 굴욕적인 크추크 카이나르디 조약을 강요당하여 크림한국(汗國)의 독립(후에 러시아에 병합)을 승인하고, 흑해의 북동지방을 러시아에 양도하고 튀르크 영토 내에 있는 그리스정교도에 대한 러시아의 보호권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후에 이것이 내정간섭에 이용되는 근원을 만들었다.

제2차 전쟁(1787∼1791)

이 굴욕적인 조약의 파기를 겨냥하고, 튀르크는 '제2차전쟁(1787∼1791)'을 일으켰으나, 명장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에게 또다시 고배를 마시고, 야시조약(92)에 의하여 다시 드니에스트르 좌안(左岸)의 땅을 러시아에 할양했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잇따른 승리는 튀르크의 운명에 대하여 유럽 열강의 중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소위 ‘동방문제’를 발생시키게 되었으나, 열강이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전쟁에 휘말려 있었기 때문에 정세는 러시아에 유리하였다.

제3차 전쟁(1806∼1812)

'제3차전쟁(1806∼1812)'은 나폴레옹의 지지를 얻은 튀르크가 러시아와의 협정을 위반하여 몰다비아 발라키아의 친러시아파 총독을 파면한 데에서 일어났다. 전투는 도나우 지방과 캅카스에서 벌어지고, 러시아가 제안한 조정(調停) 요청을 나폴레옹이 거부했기 때문에 전쟁이 오래 계속되었다. 그동안 틸지트조약(1807)에 한 때 호전되었던 러시아·프랑스 관계도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으므로, 러시아는 쿠투조프 장군을 파견하여 전쟁의 종결을 서둘러 루슈크에서 대승을 거둔 후 부쿠레슈티조약(1812)을 맺고 베사라비아를 손에 넣었다. 이때가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원정을 개시하기 1개월 전이었다.

제4차 전쟁(1828∼1829)

'제4차전쟁(1828∼1829)'은 그리스독립전쟁에 이어서 일어나 러시아는 튀르크군의 강력한 저항과 견고한 요새, 역병(疫病)으로 말미암아 의외의 고전을 계속하였으나, 아드리아노플화의(和議, 1829)에 의하여 도나우강 하류, 흑해 동쪽과 ‘해협(다르다넬스 ·보스포루스)’의 자유항행권을 획득하고 다시 그리스의 독립, 몰다비아·발라키아·세르비아의 자치(自治)를 인정하게 하고 발칸반도에서 민족운동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제5차 전쟁(1853)

이는 러시아 동방정책의 피크를 나타내는 것이었으나, 그 후 발칸반도·근동에서 러시아와 열강(특히 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의 대립이 날카로워져 튀르크의 분할을 꾀하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가 내정에 간섭하여 '제5차 전쟁’(1853)'을 일으키자, 영국·프랑스·사르데냐 등이 튀르크와 연합하여 이른바 크림 전쟁(1853∼1856)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또 '제1차 동방전쟁'이라고도 하는데, 패배한 러시아는 파리조약(1856)에 따라 베사라비아 남부를 잃은 외에 튀르크에 대한 이제까지의 많은 특권을 상실하여 그들의 동방정책은 크게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1870년대에 들어서면서 러시아의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특히 남부 러시아가 새로운 경제적 중심이 되어 흑해무역의 중요성이 높아지자, 러시아의 동방정책도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제6차 전쟁(1877∼1878)

이 시기의 특징은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를 국책의 도구로 이용하여 튀르크에 대한 발칸의 민족운동을 선동한 점인데, 그 결과 '제6차 전쟁(1877∼1878)'이 일어났다. 이것은 '제2차 동방전쟁'이라고도 하는데, 전쟁의 원인은 1875년부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불가리아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난 반란으로 이때에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단독출병(單獨出兵)이 열강을 자극할 것을 우려한 외상 고르차코프는 먼저 열강에 제안하여 국제회의를 열고 튀르크에 대한 내정개혁을 요구하는 공동권고를 하게 하였다. 튀르크가 이를 거부하자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중립을 확약받은 다음 곧 튀르크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전투는 발칸과 캅카스에서 전개되어 러시아는 상당한 고전 끝에 마침내 플레브나 요새를 공략하고, 이어 아드리아노플을 점령한 다음 이스탄불로 육박하였다. 그 결과 산스테파노조약(1878)이 체결되어 러시아는 캅카스를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의 자치, 루마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독립을 승인시켜 발칸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현저하게 강화하였다. 이러한 러시아 세력의 팽창에 위협을 느낀 열강이 이 조약의 개정을 러시아에 강요한 결과 베를린 회의(1878)에서 러시아의 특권은 다시 제한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