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전쟁

크림 전쟁

[ Crimean War ]

요약 1853∼1856년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영국·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이 크림반도·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끼리 처음 벌인 전쟁으로 이 전쟁에서 패한 후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게 된다.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야전병원에서 활동하여 간호학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

원인

원래 러시아는 빈회의(1814~1815) 이래로 오스만 제국 영내로의 남하를 그 기본적인 대외정책으로 하고 있었는데, 전쟁의 직접적 계기는 프랑스 국내 가톨릭의 인기를 얻으려고 한 나폴레옹 3세가 예루살렘 성지(聖地)에서의 가톨릭교도의 특권을 투르크의 술탄에게 요구하자, 이 땅의 그리스 정교도(正敎徒)의 비호자임을 자처하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가 대립한 데 있었다. 1853년 7월 러시아군은 몰다비아·왈라키아 등에 침입하여 이 곳을 점령하였고, 서유럽 열강의 지지를 받은 오스만 제국이 10월 러시아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경과

1853년 11월 나히모프 제독 지휘하의 러시아 흑해함대가 소아시아의 시노페만(灣)에서 오스만튀르크 함대를 전멸시키자, 영국·프랑스·사르데냐는 러시아에 대립, 오스만튀르크를 지지하고 공공연히 도전하였다. 오스트리아는 최후 통첩을 보내어, 러시아에게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의 포기·양도를 요구하였다. 니콜라이 1세는 어쩔 수 없이 이 요구에 응하였으나 사태의 악화를 두려워하여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에 대군을 배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림 전쟁 본문 이미지 1오스트리아그리스네지드팔레스타인러시아

1854년 9월 영국·프랑스·오스만튀르크군은 약 6만의 대군을 크림반도에 상륙시키고, 세바스토폴을 포위하였다. 열강 측에 비하여 힘의 열세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러시아함대는, 세바스토폴만에 자국 함정을 침몰시켜 항구를 폐쇄하였다. 한편 육상의 러시아군은 주민들의 지원 아래 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포격에 맞서 장장 11개월간이나 버티어 요새를 지켜냈으나, 1855년 8월 말 연합군에게 세바스토폴의 남쪽을 점거당하고 북방으로 퇴각하였다.

결과

니콜라이 1세는 전쟁 중인 1855년 2월에 사망하였으며,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에서의 근본적 개혁의 필요성을 깨닫고, 1856년 3월 파리에서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결과 러시아는 몰다비아에 다뉴브하구(河口)와 베사라비아의 일부를 양도하였고, 흑해에 함대를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잃었다. 흑해는 중립이 선언되어 양(兩)해협은 통상상(通商上)의 자유항행은 인정되었으나, 군함의 통과는 일체 금지되었다. 러시아는 패전을 계기로 근대화를 지향하는 운동이 일어나, 1861년의 농노해방을 비롯하여 일련의 개혁사업이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