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세바스토폴

[ Sevastopol ]

요약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원어명 Севастополь
위치 흑해 연안 크림반도 남서부
경위도 동경 33°00' 북위 44°36'
면적(㎢) 863.6
시간대 UTC+3
행정구분 러시아 세바스토폴 연방시/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 특별시
인구(명) 436,670(2018년)

세바스토폴이 속해있는 크림반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지역으로, 국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이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의 영향 하에 있다.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이며, 크림 전쟁 때 전개된 세바스토폴 공방전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세바스토폴 포위전으로 유명하다.

도시 연혁

기원전 6C 경 건설된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케르소네소스를 기원으로 한다. 1784년 예카테리나 2세의 명령에 따라 요새를 건설하였고, 세바스토폴이라 명명하였다. 세바스토폴은 고대 그리스어로 '성스러운'이라는 의미의 '세바스토스(Σεβαστός)'와 '도시'라는 뜻을 가진 '폴리스(πόλη)'의 합성어이다. 또한 라틴어로 하면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A.D. 14)와 동일하여 '황제의 도시'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함대와 조선, 선박 수리업이 발달하였고, 인구도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림전쟁의 발발로 세바스토폴의 성장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크림전쟁은 근동과 발칸 지방의 패권을 두고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유럽 열강이 충돌한 전쟁으로, 1854년 10월 연합군의 포격과 함께 세바스토폴 공방전이 시작되었고, 이는 1855년 8월 27일까지 무려 349일 동안 지속되었다. 이 전투에 포병 장교로 참여했던 톨스토이(Толстой, 1828~1910)는 후에 소설 《세바스토폴 이야기(Севастопольские рассказы)》에서 그 참혹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세바스토폴은 전략적으로는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으나, 크림반도 관광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또 한 번의 전쟁을 겪게 되었다.

세바스토폴 포위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 전투 중 하나로 독일, 루마니아, 이탈리아 추축국과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간의 점령전을 일컫는다. 1941년 가을 크림반도에 들어와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한 추축국은 세바스토폴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수차례의 공세에도 세바스토폴 점령에 실패하자, 1942년 여름까지 소련군을 250일간 포위한 채 육상, 해상, 공중으로 포위전을 펼쳤다. 1942년 6월 스퇴르팡(Störfang) 작전에 착수한 추축국은 소련의 붉은 군대와 흑해 함대를 포격하기 시작하였고, 약 한 달 만에 세바스토폴 항구를 점거하였다. 그러나 오랜 전투와 혹한으로 2만 5천여 명이 전사하는 등 추축국 또한 전력상의 큰 손해를 입었다. 나치의 식민화 계획 아래 있던 세바스토폴은 1944년 5월 9일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재탈환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시대의 세바스토폴은 결국 폐쇄되었고, 1954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관할이 변경되었다. 1950년대에는 도시의 주요 거리들과 광장을 재건축하고 60~70년대에는 주거 지역 및 도시 제반 시설을 새로 다졌다.

우크라이나에 편입된 후 1991년 크림 자치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주의 사회주의 공화국의 해체 이후 러시아 내에서는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을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에 따라 1993년 7월 10일, 러시아 연방의회는 세바스토폴을 '러시아의 연방시'로 선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는 이 결의안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4년 3월 16일,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크림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은 러시아와의 합병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에는 세바스토폴 시의 유권자 89.5%가 참여했고, 그중 95.6%가 러시아와의 합병을 찬성했다. 3월 18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1952~) 대통령과 세르게이 발레례비치 악쇼노프(Сергей Валерьевич Аксёнов, 1972~ ) 크림공화국 총리, 블라디미르 안드레예비치 콘스탄티노프(Владимир Андреевич Константинов, 1956~) 크림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찰르이(Алексей Михайлович Чалый, 1961~) 세바스토폴 시장은 러시아-크림공화국 합병 조약에 조인하였고, 3월 21일 러시아 연방의회가 크림반도 합병 조약 비준과 관련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최종 서명함으로써 2015년 1월 1일 세바스토폴은 크림공화국과 함께 러시아 연방 주체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이를 불법이라고 주장했고,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유엔 총회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결의안은 권고적인 성격을 가질 뿐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세바스토폴을 포함한 크림반도는 여전히 영토 분쟁 지역으로 남아있다.

도시 정보

겨울이 따뜻하고 여름이 서늘하다.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공존하며, 남동부 해안에는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난다. 인구는 436,670명(2018)이다. 러시아인(81%)과 우크라이나인(14.2%)이 대부분이며, 이외에 벨라루스인, 타타르인 등이 거주하고 있다.

대서양과 인도양 방면의 원양 어업 기지인 세바스토폴은 특히 수산물 및 수산 가공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연간 어획량은 30만 톤에 달하며, 통조림 생산 전문 가공은 연간 약 1억 6천만 개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세바스토폴에 위치한 대규모 조선소와 선박 수리공장들이 지역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봉제산업으로도 유명하다.

흑해 연안의 교통 및 운송의 중심지 역할도 한다. 14세기부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여, 1875년 철도가 건설된 이후 전성기를 맞이했다. 연간 1,000척 이상의 선박이 세바스토폴에서 40여 개국으로 여객과 화물을 운송한다.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으로는 트롤리버스가 있다. 130여 개의 노선이 운행 중이며, 하루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트롤리버스를 이용한다. 도시의 북서부에 벨벡공항(Аэропорт Бельбек)이 있으나, 2014년부터 일반 여객 항공 운항이 중단된 상태이다.

흑해 연안의 온화한 기후와 더불어 도시의 풍부한 역사와 유적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전승 광장(Парк Победы)을 포함한 대형 공원들과 150개 이상의 유적지들은 세바스토폴 고유의 깊은 정취를 자아낸다. 그 밖에도 흑해 함대를 둘러볼 수 있는 군사 박물관, 역사·고고학 박물관 등 다수의 박물관과 극장 등이 있다.

역참조항목

런던의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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