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커스터왕가

랭커스터왕가

[ House of Lancaster ]

요약 플랜태저넷 왕조 계통의 영국 왕가로 3명(헨리 4세, 헨리 5세, 헨리 6세)의 잉글랜드 왕을 배출하였다. 장미전쟁 기간 동안 잉글랜드의 왕위를 놓고 요크 왕가와 치열하게 다툼을 벌였다.

플랜태저넷 왕조(House of Plantagenet)에서 갈라져 나온 왕가이다. 세 명의 잉글랜드 왕 헨리 4세(Henry IV, 1367~1413, 재위 1399-1413), 헨리 5세(Henry V, 1387~1422, 재위 1413-1422), 헨리 6세(Henry VI , 1421~1471, 재위 1422-1461, 1470-1471)를 배출하였다.

랭커스터(Lancaster)란 성은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Henry III, 1207~1272, 재위 1216-1272)의 둘째 아들 곱사등인 애드먼드(Edmund Crouchback, 1245~1296)가 랭커스터 지역의 백작이 되면서 생겨났다. 이후 애드먼드의 첫째 아들 토머스(Thomas, 1278~1322)와 둘째 아들 헨리(Henry, 1281~1345)가 차례로 랭커스터의 백작 직위를 상속받았으며, 헨리(Henry, 1281~1345)의 아들이 초대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으로 서임되었다.

하지만 초대 랭커스터 공작 헨리(Henry of Grosmont, 1310~1361)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공작 지위는 사위였던 존(John of Gaunt, 1340~1399)에게 넘어갔다. 그는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 1312~1377, 재위 1327-1377)의 넷째 아들이기도 했다. 이후 존의 아들 헨리 4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면서 그는 랭커스터 왕가의 시조로 여겨지게 되었다. 

존의 아들 헨리 4세(Henry IV, 1367~1413, 재위 1399-1413)는 사촌인 직계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 리처드 2세(Richard II, 1367~1400, 재위 1377-1399)에게 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귀족들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켜 결국 성공했다. 리처드 2세를 폐위한 헨리 4세는 스스로 잉글랜드의 왕이 되어 랭커스터 왕가 출신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 왕위는 그의 아들 헨리 5세와 손자인 헨리 6세에게 이어졌다.

국력을 증진시키고 백년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었던 헨리 5세와 달리 헨리 6세는 병약했고 자주 정신착란증을 일으켰다. 이에 왕권이 약해진 틈을 타 플랜태저넷 왕조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가문인 요크 왕가(House of York)는 잉글랜드 왕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갈등은 점차 심해져 두 가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 때 랭커스터 왕가는 붉은 장미를, 요크 왕가는 흰 장미를 문장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 전쟁은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 1455~1485)으로 불렸다.

헨리 6세는 1461년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Edward IV, 1442 ~ 1483, 재위 1461-1470, 1471-1483)에 의해 폐위되었으나 동맹군의 승리로 1470년 다시 왕위에 오르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1471년 다시 폐위되었고 결국에는 살해당했다. 그 뒤 왕위는 완전히 요크 왕가에게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