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물 ·술 ·장 등을 담아 두는 큰 오지그릇이나 질그릇.
항아리

항아리

항아리에 비해 운두가 높고 전이 있다. 독은 물이나 이외에 소금이나 김장김치를 담아 두는 데도 쓰인다.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겨울 동안의 부식물로 김장김치가 발달하여 독이 많이 쓰이고 있다. 또 간장 ·된장을 담글 때도 독을 많이 사용하는데 햇볕이 잘 드는 마당 한구석 장독대에 놓는다. 외국에서는 나무로 만든 통(桶)이나 상자에 넣을 물건도 한국에서는 독이나 독보다 작은 항아리에 넣는다.

이들 크고 작은 그릇선반이나 찬장 또는 부엌 구석구석에 놓아서 한 가정의 유복함을 과시하는 증표가 되기도 하였다. 화전민(火田民)들은 독을 옷장 대신 쓰기도 하였다. 물독은 북한의 것은 아가리가 좁은 데 반해 남한의 것은 아가리가 크다. 중국에서도 독은 물을 담아 두는 것 외에 채소를 절여서 만든 반찬을 넣어 두는 그릇으로도 쓰는데, 대개 뚜껑을 덮어 옥외(屋外)에 놓아둔다. 고고학에서는 크고 작은 것과는 관계없이 속이 깊고 아가리가 큰 주발 모양의 토기를 아가리가 오므라든 항아리 모양의 토기와 구별하여 독이라 한다.

독의 중요성은 그 원시성(原始性)에 있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토기는 독이었다. 둥글고 깊게 팬 토기의 밑바닥은 뾰족하거나 둥글지만 아가리는 반드시 널따란 모양이었다. 덴마크의 엘테벨레의 어렵인(漁獵人)들은 밑바닥이 뾰족한 독을 사용하였다. 북부 유라시아 어렵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밑바닥이 뾰족한 독과 밑바닥이 둥근 독은 여기서 그 전통을 잇는다. 이 독은 그대로 불에 올려놓으면 냄비의 구실을 하는데, 말하자면 음식 익히는 그릇이다. 받침대가 딸린 것이기는 하지만 북부 유라시아의 청동솥은 이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집트의 최고기(最古期)에 농경인들이 사용하였던 그릇 중에서도 얕은 두세 개의 작은 그릇 외에는 독이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어쨌든 항아리 모양의 토기가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동양에서도 토기 문화는 처음부터 독이 주였다. 시초에는 밑바닥이 뾰족하였다가 둥근 것으로 변하였고 후에 널따랗게 되었으며 다시 원통 모양의 토기로 발전하였고, 어떤 것은 상반부가 넓어져 장식적인 것이 되었지만 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항아리가 발견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항아리가 나온 후에도 독의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으며 항아리와 독은 서로 대립되는 2대양식이었다. 다만 항아리가 주로 저장용이었다면 독은 음식 익히는 그릇으로 썼다. 중국의 채도문화기(彩陶文化期)에도 이 두 가지 형식의 대립은 나타난다.

역참조항목

채독, 해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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