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남

김제남

[ 金悌男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선조 때 관직을 지냈으며, 1602년 딸이 선조의 계비(仁穆王后)가 되었다. 1613년 인목왕후의 소생 영창대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이이첨 등의 무고를 받고 사사되었다.
출생-사망 1562 ~ 1613
본관 연안
공언
시호 의민
별칭 연흥부원군

본관 연안. 자 공언(恭彦). 시호 의민(懿愍). 선조의 장인.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 1594년 의금부도사 ·공조좌랑을 거쳐 연천현감을 역임하였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01년 정언 ·헌납 ·이조좌랑이 되었다.

1602년 딸이 선조의 계비(繼妃: 仁穆王后)가 되자, 돈령부영사를 제수받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13년 인목왕후의 소생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한다는, 이이첨(李爾瞻) 등의 무고를 받고 사사(賜死)되었다.

1616년(광해군 8) 폐모론이 일자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세 아들도 죽음을 당하고, 부인과 어린 손자 천석(天錫)만이 화를 면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뒤 관직이 복구되고 왕명으로 사당이 세워지고, 영의정이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