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지방의 무인배출

관동지방의 무인배출

임충민공 충렬사

임충민공 충렬사

원주의 치악산(雉岳山:1,288m)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양산(陽山)이어서, 그 곳에서 옛날부터 무인(武人)이 많이 나왔다. 고구려 명장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이 곳 태생이고, 장군 임경업(林慶業)도 원주군 문막(文幕)에서 태어났다.

고려의 무장으로서 거란병(契丹兵)을 물리친 원충갑(元沖甲), 북원(北原)의 장수 양길(梁吉), 추모비가 세워진 김제남(金悌男), 한말에 장렬한 전사를 한 민긍호(閔肯鎬) 대장, 양요(洋擾) 때 공이 컸던 정기원(鄭岐源) 등도 모두 원주 출신들이다. 원충갑을 비롯한 원주원씨(原州元氏) 및 변수(邊脩)를 비롯한 원주변씨(原州邊氏)의 무인 혈맥은 한말까지 이어졌다.

강릉의 육성당신(肉城堂神)으로 모신 창해(滄海) 장군은 강릉사람은 아니지만, 그 곳에서 신(神)으로 모실 정도로 무인으로서 훌륭하였다. 필경 남대천(南大川) 하구에 정착한 남방계(南方系)의 이방인(異邦人)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그는, 사대사상(事大思想)이 강했던 당시에 진시황(秦始皇)을 살해하겠다고 자원했던 사람이다.

철원군수(鐵原郡守) 김응하(金應河)는 죽어서 부차령(富車嶺)의 장군버들이 되었다고 하여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무신들이 그 곳에서 무운(武運)을 빌기도 하였다. 청태조(淸太祖)가 중국을 제패할 무렵, 명(明)나라의 요청으로 조선이 랴오둥[遼東]으로 원군(援軍)을 보냈을 때 그는 좌영장(左營將)으로 싸움에 나가 청군을 무찌르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 후 안동(安東)김씨의 무맥(武脈)이 오래 계속되었다. 임진왜란 중 진주농성(晋州籠城) 때에 비거(飛車)를 만든 사람은 횡성(橫城)의 산악지대에서 자란 정평구(鄭平九)였는데, 그의 소년시절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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