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필경

계원필경

[ 桂苑筆耕 ]

요약 통일신라시대의 학자·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857∼?)의 시문집.
구분 시문집, 활자본
저자 최치원
시대 통일신라시대

활자본. 20권 4책. 저자는 일찍이 당(唐)나라에서 벼슬하였는데, 879년(신라 헌강왕 5) 당의 황소의 난 때에는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 표장(表狀)·서계(書啓)·격문(檄文) 등 많은 명문(名文)을 지었으며, 885년 귀국하였다. 그 , 재당시(在唐時)에 저작한 《계원필경》 《중산복궤집(中山覆匱集)》 《시부집(詩賦集)》 등 28권을 찬성(撰成)하여 헌강왕(憲康王)에게 진헌(進獻)하였는데, 그 중 《중산복궤집》과 《시부집》 등 8권은 전하지 않고 《계원필경》 20권만이 전한다.

내용은 권1에 〈하개연호표(賀改年號表)〉 등 표(表) 10편, 권2에 〈사가태위표(謝加太尉表)〉 등 표 10편, 권3∼4에 〈사조장(謝詔狀)〉 등 장(狀) 20편, 권5에 〈주유황소(奏誘黃巢) 등 주장(奏狀) 10편, 권6에 〈하입만사회장(賀入蠻使廻狀)〉 등 10편, 권7∼10에 〈활주도통왕령공(滑州都統王令公)〉 등 별지(別紙) 80편, 권11에 〈격황소서(檄黃巢書)〉 등 격문(檄文) 4편과 〈답절서주사공서(答浙西周司空書)〉 등 서(書) 6편, 권12에 〈제주허칙위곡(滁州許勅委曲)〉 등 위곡(委曲) 20편, 권13에 거첩(擧牒) 25편과 〈내행묵칙첩사(內行墨勅牒詞)〉 5편, 권14에 거첩 25편, 권15에 〈응천절재사(應天節齋詞)〉 등 15편, 권16에 제문(祭文)·서(書)·기(記)·소(疏) 등 10편, 권17에 〈초투헌태위계(初投獻太尉啓)〉 등 10편과 7절기덕시(七絶記德詩) 30수, 권18에 서장(書狀)·서계(書啓) 등 25편, 권19에 〈상좌주상서별지(上座主尙書別紙)〉 등 별지·장계(狀啓)·잡서(雜書) 등 20편, 권20에 장계·별지·제문 등 10편과 〈진정상태위시(陣情上太尉詩)〉 등 시 30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저자의 명문만을 가려 넣은 동방 최고(最古)의 문집으로, 특히 권11에 수록된 〈격황소서〉는 황소(黃巢)가 이것을 읽고 상 앞에 엎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놀랐다는 일화가 있다. 또, 〈헌생일물장(獻生日物狀)〉은 인삼(人蔘)연구에, 〈보안남록이도기(補安南錄異圖記)〉는 월남사(越南史)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또한 당대전란사(唐代戰亂史), 한족(漢族)과 남만(南蠻)의 교섭관계, 신라와 당과의 교통 및 문화교류 등의 연구에 문헌적 가치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인 영향에 불과하다. 이 책에 수록된 표(表)·장(狀)·계(啓)·격(檄)·서(書) 등 온갖 체(體)의 글은 모두 사륙변려체(변려문)의 명문으로 되어 있어, 그 능숙한 형식미와 대장법(對仗法)의 묘는 독보적인 것으로서 한시문(漢詩文)에 끼친 문학적 가치는 물론, 후세의 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불후의 명저이다.

초간본(初刊本)과 여대본(麗代本)이 있었다 하나 전하지 않으며, 또 과거 1000여 년 사이에 몇 번이나 출간되었는지 이 또한 문헌이 인멸되어 알 길이 없다. 다만, 현존하는 각본을 소개하면, ① 구각본(舊刻本):조선 초기 판본 혹은 고려판(高麗版). ② 일본 아리야마로본[在山樓本:前間恭作의 장서각]:숭정(崇禎) 이전의 각판본. 20권 4책. ③ 제국도서관본(帝國圖書館本):각본. 20권 3책. ④ 박물관본(博物館本):목판본. 20권 4책. ⑤ 서서서목초본본(西序書目草本本):목판본. 20권 4책. ⑥ 규장각본(奎章閣本):각판. 20권 4책. 서거정(徐居正)의 서문이 있다. ⑦ 도광갑자본(道光甲子本):20권 4책. 홍연천(洪淵泉)의 서문이 있다. 기타 남만주철도본, 파리 동양어학교본, 가나자와본[金澤本] 등 15∼16종을 헤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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