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문학과 음악

신라의 문학과 음악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삼한(三韓)에서 행한 5월 기풍제(祈豊祭)나 10월 상달제에서 음주가무한 것을 보면 고대 문학은 종교적인 가무 제의(祭儀)에서 발생한 것임을 시사해준다. 삼국시대의 문학은 설화문학과 시가문학으로 대별되는데 신라의 설화문학에는 우노(于老)의 이야기 등을 들 수 있고, 시가문학으로는 향가를 들 수 있다. 향가로는 《삼국유사》에 혜성가(慧星歌) ·안민가(安民歌) ·헌화가(獻花歌) 등 14수가 전하며, 혁련 정(赫連挺)의 《균여전(均如傳)》에도 11수가 전한다.

888년(진성여왕 2) 대구화상(大矩和尙)과 위홍(魏弘)이 지은 《삼대목(三代目)》이란 향가집이 있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이 향가는 작가인 융천사(融天師) ·광덕(廣德) ·월명사(月明師) 등에서 보듯이 승려 사회와 화랑도(花郞徒:得烏) 사회에서 우수한 작품을 내고 있으며,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도 국가안태의 기원(혜성가), 불덕(佛德)에 대한 찬양과 기원(千手大悲歌), 사자(死者)에 대한 기도(願往生歌) 등 종교적인 뜻에서 창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시가와 관계가 있는 음악과 무용도 종교적 성격이 농후하다. 음악가로서 우륵(于勒)과 그의 제자인 계고(階古) ·이문(尼文) ·법지(法知) ·백결선생(百結先生) ·옥보고(玉寶高) ·귀금(貴金) ·장안(長安) ·극상(克相) 등이 대가였다. 악기로는 3죽(三竹:大笭 ·中笭 ·小笭)과 3현(三絃: 伽倻琴 ·玄琴 ·鄕琵琶), 대고(大鼓) 등이 사용되었다. 최치원(崔致遠)의 시 《향약잡영(鄕約雜詠)》에 나타난 금환(金丸)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狻猊) 등 5기(五伎)와 처용무 ·상염무(霜髥舞)가 있었다.

문장으로는 진흥왕의 순수비, 진덕여왕의 《태평송(太平頌)》, 강수의 《답설인귀서(答薛仁貴書)》, 문무왕릉 비문과 최치원의 《계원필경(桂苑筆耕)》 외에 진감선사비문(眞鑑禪師碑文) ·낭혜화상비문(朗慧和尙碑文) ·지증대사비문(智證大師碑文) ·숭복사비문(崇福寺碑文)이 있고, 최승우의 《사륙호본집(四六餬本集)》과 견훤을 위하여 왕건에게 보낸 격서(檄書), 즉 《대견훤기고려왕서(代甄萱寄高麗王書)》 등이 대표적 작품인데 신라 하대의 유작에서는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의 색채가 혼용되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