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 난

황소의 난

[ 黃巢─亂 ]

요약 중국 당(唐)나라 말기에 일어난 농민반란이며 당나라가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 말기 희종(僖宗)의 건부(乾符)∼중화(中和) 연간(875∼884)에 일어났다. 당나라 말기 안사의 난이 평정된 이후 지방 절도사들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갔다. 이들 번진(藩鎭)의 세력이 늘어나고 중앙관리의 당쟁과 환관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조정의 지배력이 흔들리고, 백성에 대한 수탈도 강화되어 토호나 상인층도 당왕조에 심각한 불만을 품게되었다. 이런 상황은 저장[浙江]의 구보(裘甫)의 반란(859∼860)과 쉬저우[徐州]의 군인 방훈(龐勛)의 반란(868∼869)으로 이어졌다.

건부연간(乾符年間)에는 전국에 기근이 내습하여 사회적 불안은 절정에 달하였다. 당나라 말기에 소금세가 높아지는데다 소금판매업자들이 소금값을 높혀 폭리를 취하게 되자 소금밀매가 성행하게 되었고 밀매를 위한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서 복주지방(하남성)의 소금 밀매업자의 두령이었던  왕선지(王仙之)가 874년에 난을 일으켰다. 얼마후 원구지방(산동성)의 소금 밀매업자의 두령인 황소(黃巢)가 난을 일으켜 왕선지와 합류하였다. 왕선지와 황소는 하남성과 산동성 일대를 점령하였고 점점 그 기세가 높아갔다. 왕선지가 황매(호북성)에서 관군에게 죽은 후 황소는 반란군의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 되었다. 허난[河南] ·산둥 및 장시[江西] ·푸젠[福建] ·광둥[廣東] ·광시[廣西] ·후난[湖南] ·후베이[湖北]로 대이동을 전개하며 880년 60만 대군으로 불어난 황소의 군대는 뤄양[洛陽]에 이어 장안[長安] 등을 함락하였고 황제 희종은 쓰촨[四川]으로 달아났다.

황소는 장안에 스스로 정권을 세우고 국호를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이라 부르고 항복한 관리도 기용하여 통치를 굳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관중[關中]의 정권은 경제적 기반이 없어서 당나라 왕조를 돕는 투르크계 이극용(李克用) 등 토벌군에게 격파되어 3년 후에는 장안으로부터 동방으로 퇴각하여 이듬해 산둥의 타이산[泰山] 부근에서 자결하였다. 이 난으로 당나라는 23년 간 존속하지만 명백만 유지했을 뿐이며 근본적으로 당나라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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