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제도

포클랜드 제도

다른 표기 언어 Falkland Islands
요약 테이블
위치 남아메리카 대륙 동남부 남대서양
인구 3,480명 (2020년 추계)
면적 12,200㎢
언어 영어
국가 영국

요약 남대서양에 있는 영국의 자치식민지.
Islas Malvinas라고도 함.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과 경제
    1. 국민
    2. 경제
  3. 정치와 사회
  4. 역사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

남아메리카 대륙 남단에서 북동쪽으로 480km 떨어져 있으며, 마젤란 해협 동쪽으로도 비슷한 거리 만큼 떨어져 있다.

자연환경

포클랜드 제도는 주요섬인 이스트포클랜드·웨스트포클랜드 섬과 200여 개의 조그만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스트포클랜드 섬에는 수도이며 유일한 도시인 스탠리 항이 있다.

포클랜드 제도 정부는 영국의 부속령인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섀그클러크 암초 등을 관할하는데, 섀그클러크 암초는 포클랜드 제도 동쪽과 남동쪽으로 1,100∼3,200km 지점에 있다. 1690년 영국인 선장 존 스트롱이 처음으로 포클랜드 제도에 상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2개의 주요섬 사이의 해협을 영국의 해군 장군 포클랜드 백작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고, 나중에 그 이름이 주위 섬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남아메리카 현지에서는 주로 말비나스 제도로 불리는데 이는 초기 프랑스 탐험가들이 탐험을 시작한 지점인 생말로(St. Malo) 항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구릉지대가 주요한 2개의 섬의 북부를 가로질러 동서로 뻗어 있는데 이스트포클랜드 섬의 어즈번 산에서는 그 높이가 705m에 달한다. 해안에는 익곡이 많이 형성되어 보호항이 발달했으며, 작은 강들이 이탄으로 덮인 넓은 계곡을 지난다. 서늘하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극한 온도를 나타내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약간의 계절 변화가 있을 뿐이다. 강한 서풍이 늘 평균 시속 31㎞로 부는 반면 연평균기온은 약 5℃이며 평균최고기온은 9℃, 평균최저기온은 3℃이다. 연평균강수량은 635㎜이다.

키 작은 초본 및 관목류가 빽빽하며, 교목은 자라지 않는다. 초원지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화이트그래스(Cortaderia pilosa)와 디들디(Empet-rum rubrum)이다. 방목이 불가능한 앞바다 섬들은 터속그라스(Parodiochloa flabellata)로 뒤덮여 있다. 서늘하고 습기가 많은 기후로 인해 식물의 완전 분해가 억제되어 현지에서 연료로 사용되는 이탄층이 두껍게 형성된다.

원산지 포유동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포클랜드 고유종인 여우는 멸종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검은눈썹알바트로스, 매, 가는 줄무늬의 카라카라 등을 비롯해 약 65종(種)의 조류가 서식한다. 또한 수백만 마리나 되는 펭귄의 서식지로 대부분이 바위날기펭귄, 마젤란펭귄, 젠투펭귄이고, 왕펭귄, 마카로니 펭귄도 소수 있다. 돌고래류와 작은 곱등어류도 흔히 볼 수 있으며 오타리아 비로니아, 코끼리물범류도 풍부하다. 물개아과 동물들은 몇몇 외딴 곳에서만 볼 수 있다.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

국민과 경제

국민

포클랜드 제도의 주민은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계 포클랜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활방식은 목양을 키우는 고립된 소규모 공동체생활과 수도인 스탠리에서의 생활 2가지 방식으로 명백히 나뉜다. 스탠리에는 영국의 과학자와 군인을 포함하여 인구의 2/3가 거주한다. 2019년 추계인구는 2,921명이며, 인구밀도는 0.24명/㎢이다.

경제

2개의 주요섬에서 스탠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대부분은 목양지이다. 규모가 다양한 양목장은 개인이나 영국에 본사를 둔 회사의 소유이다. 약 70만 마리의 이 있는데 매년 수천t의 양모와 약간의 양고기가 생산된다. 모는 섬의 주요자원으로 주로 영국으로 수출되며, 1851년 왕의 칙허장을 받은 포클랜드아일랜즈사는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여전히 제도에서 유일한 최대 목양주이다. 인접한 바다에서 행해지는 수산업이 목양업을 지원해준다.

정치와 사회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 왕이 임명한 총독을 행정부의 수반으로 한다. 총독은 의회의 의장을 겸하며 선임사무관들과 선출된 의회의원들로 이루어진 행정위원회의 조언을 듣는다. 포클랜드에는 실업자가 없으나 주택난이 심각해 유입인구가 적다.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15세까지의 아동은 무상으로 의무교육을 받게 되어 있다. 스탠리에서는 중등과정까지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스탠리에 있는 병원에서 무료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

내륙교통은 자동차와 국영항공이 담당한다. 해안의 화물선은 보급품을 운반하고 영국으로 수송할 연간 양모 생산량을 모으기 위해 주요섬인 이스트포클랜드·웨스트포클랜드 섬을 돈다. 포클랜드의 마운트 플레전트 공항을 출발, 어센션 섬을 경유해 영국으로 가는 정기 여객기가 있다. 인공위성을 통해 섬 외부와의 통신도 원활한 편이다.

역사

포클랜드 제도
포클랜드 제도

〈욕망 Desire〉지에 따르면 이 섬은 1592년 영국인 항해가 존 데이비스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뚜렷한 역사적 사실로서 확인되는 것은 1600년경 네덜란드인 세발다 데 웨르트에 의한 발견이다.

최초의 주거지는 1764년 프랑스 항해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이스트포클랜드 섬에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다. 1765년 영국인이 웨스트포클랜드 섬에 처음 정착했으나 1767년에 이미 프랑스의 정착지를 사들였던 스페인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1770).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자 1771년 웨스트포클랜드 섬의 영국인 전초기지가 복구되었으나, 1774년 영국은 영토권을 포기하지 않은 채 경제적인 이유로 섬에서 철수했다.

스페인은 1811년까지 이스트포클랜드 섬(당시의 이름은 솔레다드 섬)에 정착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대영제국).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부는 1820년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주권을 주장했다. 1831년 미국 군함 USS 렉싱턴호는 아르헨티나가 그 지역 내에서 물범류를 사냥하던 미국의 배 3척을 불법 포획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트포클랜드 섬에 있는 아르헨티나의 정착지를 파괴했다.

1833년초 영국군은 섬에 잔류해 있던 몇 안 되는 아르헨티나 장교들을 추방했다. 1841년 포클랜드 제도에는 영국인 민간인 부총독이 임명되었고, 1885년에는 1,800명 정도로 이루어진 영국인 지역사회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1892년에 포클랜드는 식민지가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정기적으로 영국의 섬 점령에 항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싼 영토권 문제는 1964년 국제연합(UN) 식민지 해방위원회가 포클랜드 제도의 지리적 위치를 문제삼으면서 UN으로까지 넘어갔다.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간의 신대륙 분할기준이 되었던 토르데시야스 조약(1494)에 의해 수정된 1493년의 교황칙서, 스페인을 계승했다는 점, 포클랜드 제도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가깝다는 점, 식민지 상황을 종식시켜야 하는 필요성 등을 근거로 삼았다.

영국은 1833년 이래 '개방적이고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소유·점유·행정'과 UN 헌장에 명시된 자결원칙 적용 등을 근거로 자국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통치는 식민지 상황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포클랜드인의 소망에 반대되는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했다. 1965년 UN 총회는 이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영국과 아르헨티나를 소환하여 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형태의 분쟁들은 1982년 2월까지 계속되었다.

그 직후인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의 군사정부는 곧 포클랜드를 침공했다. 이 침공으로 시작된 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군이 포클랜드 제도의 수도인 스탠리에서 제도를 강제로 재점령한 영국군에게 항복함으로써 10주 만에 끝났다. 영국은 섬에 군대를 계속 주둔시켰고, 군사제한지역과 어획금지구역을 상당히 먼 거리까지 확대했다. 인구 2,564(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