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캄보디아

다른 표기 언어 Cambodia 동의어 캄보디아 왕국, Kingdom of Cambodia
요약 테이블
위치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반도 남서부
인구 17,121,847명 (2024년 추계)
수도 프놈펜
면적 181,035.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캄보디아 왕국 (Kingdom of Cambodia)
기후 열대몬순기후
민족 구성 크메르족(90%), 베트남인(5%), 중국인
언어 크메르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 양원제
종교 소승불교(95%)
화폐 리엘 (Riel)
국화 수련
대륙 아시아
국가번호 855
GDP USD 24,360,000,000
인구밀도 95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kh

요약 아시아의 국가. 수도는 프놈펜이다. 수도 프놈펜에는 프랑스, 미국의 영향 및 여러 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2,000년 동안 인도와 중국으로부터의 문화를 흡수했고 이를 다른 동남아시아로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
  6. 역사
  7. 캄보디아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캄보디아(Cambodia) 국기
캄보디아(Cambodia) 국기

수도는 프놈펜이다. 서쪽과 북서쪽은 타이, 북동쪽은 라오스, 동쪽과 남동쪽은 베트남, 남서쪽은 타이 만(灣)과 접하고 있다.

넓은 평원과 여러 개의 큰 강으로 이루어진 캄보디아는 중국과 인도 및 동남 아시아를 잇는 주요 육상로 및 수로 가운데 위치한다.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 및 여러 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수도인 프놈펜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프놈펜은 대부분이 농촌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중심지 모습을 띠고 있다.

2,000년 동안 캄보디아는 인도와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을 흡수했으며, 그 흡수한 문명을 다른 동남 아시아로 전파했다. 1~8세기에 푸난과 첸라의 힌두교-불교 왕조에서부터 9~15세기 앙코르 시대를 통해, 캄보디아는 지금은 타이, 베트남, 라오스의 일부가 된 영토를 지배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제국은 12세기에 왕조의 전성시대를 누렸다. 이 시기는 앙코르와트, 바욘, 그리고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톰으로 알려진 거대한 사원 건축물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400년에 걸친 쇠퇴기 후에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고, 20세기 동안에는 전쟁의 혼란을 경험했다. 그 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했고, 그 이후 다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다. 1975~79년 나라는 농촌에서 공산주의 게릴라 운동을 펼치던 크메르루즈의 집권으로 황폐화되었다. 크메르루즈 집권기 동안 최소한 150만 명에 달하는 캄보디아인들이 피살되었거나 사망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푸차 인민공화국 정권 아래서 회복을 위한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 나라는 정치적 자치를 회복했고 헌법에 기초한 정부를 재수립했다. 이어서 보통선거를 시행했다. 캄보디아 경제는 꾸준히 개선되었고, 이 나라는 "미래를 겁내지 말고 과거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는 캄보디아의 격언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도
캄보디아

자연환경

지형적으로 총 육지면적의 3/4을 차지하는 중부의 넓은 평야들과 남쪽으로 국토의 동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메콩 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부 저지의 비옥한 충적평야들은 톤레사프 호를 둘러싸고 있으며 이 호수의 물은 사브 강을 따라 동쪽으로 흘러 메콩 강에 유입한다. 중부 평야지역을 둘러싸고 북동쪽과 동쪽에는 평균 해발 360m의 고지대가 있고, 북쪽에는 당그레크 산맥(평균고도 490m), 남서쪽에는 오지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크라반(카르다몸) 산맥담레이(코끼리) 산맥이 있다.

메콩 강은 캄보디아에서만 약 505km의 거리를 흐른다. 메콩 강의 연례적인 범람은 양쪽 언저리 광대한 지역에 비옥한 퇴적물을 쌓으며 수많은 논에 자연적으로 물을 대주고 있다. 기후는 열대 몬순 기후이고 기온은 1월의 28℃에서 4월의 35℃ 사이를 오르내린다. 남서계절풍이 부는 시기에 주로 비가 내리며, 연강우량은 남서부 산지 사면의 5,000㎜에서 중부 평원의 1,400㎜ 사이에 걸쳐 있어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다. 기후는 자연식생에 적합하여 국토의 약 3/4은 삼림으로 덮여 있다. 동물로는 코끼리·들소·표범·곰 등이 있다.

앙코르(Angkor)사원에서 바라본 정글. 시엠레아프(Siem Reap)에 위치
앙코르(Angkor)사원에서 바라본 정글. 시엠레아프(Siem Reap)에 위치

국민

종교는 소승불교가 중심을 이루며, 인구의 9/10는 불교도로 추산된다.

캄보디아의 인구 현황과 동태는 추정이 거의 어렵다. 10년 동안 계속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내전, 폴 포트 시대에 크메르루즈 정부가 저지른 대량학살 등으로 인해 1970년과 인구조사가 실시된 1981년 사이에는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다.

크메르족은 인도인, 인도말레이인, 타이인, 중국인을 비롯하여 여러 인종집단이 수세기에 걸쳐 통혼한 결과 생긴 혼혈 인종이다(→ 타이족). 1975년 크메르루즈는 중국인과 부족민을 빼고 소수민족(베트남인, 참말레이인, 유럽인) 대부분을 국외로 추방했다. 1990년대초 타이에 피신한 크메르 난민의 수는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국제연합(UN)에서 1980∼85년의 자연증가율을 2.9%로 추산했으나 학살과 전쟁으로 1985년의 총인구는 1975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인구의 약 1/3은 15세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0년대 도시인구는 총인구의 1/10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대다수는 몬크메르족에 속한다. 2024년 추계인구는 1,712만 1,847명이며, 전체 인구의 20%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의 31%는 15세 이하의 유소년층이다.

일하고 있는 농민의 모습
일하고 있는 농민의 모습

경제

캄보디아는 개발도상국이며, 세계최빈국에 속한다. 노동력의 3/4을 고용하고 있는 농업은 자급농업이 중심을 이룬다. 주요농산물은 이고 고무는 주요 환금작물이다.

고무나무
고무나무

정부에서는 농민들에게 수입 품종보다 싹이 잘 나는 국내 품종의 벼를 논에 심게 하는 데 성공했다. 적은 양의 카사바·사탕수수·고구마·옥수수도 생산된다. 가축(주로 소·돼지·물소) 사육과 연안 어업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소량의 인회암, 보석, 소금, 비금속 건축자재가 생산된다. 석유의 국내소비는 최저 수준이며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제조업은 거의 발달하지 않았으며 국내에서 생산되는 고무, 쌀, 기타 농산물 등의 가공이 중심을 이룬다. 적은 양의 고무와 농산물, 티크를 비롯한 목재를 수출하며 자본과 소비재는 대부분 수입한다. 소련이 주요 교역상대국이었다. 포장도로는 전체도로의 약 1/5에 불과하며 내륙수로로는 메콩 강, 사브 강, 톤레사프 호가 있다. 제1의 심해항으로 타이 만의 캄퐁사옴 항이 있으며 프놈펜 부근에 국제공항이 있다.

정치와 사회

캄보디아는 1975∼79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즈 치하의 전체주의 국가였으나 이후 1979∼91년에는 인접한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보다 온건한 공산당의 통치하에 있었다. 1991년부터 UN 감시하에 일정 기간 과도정부를 거친 후 1993년 새로운 국회의 구성을 위한 다당제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캄보디아를 입헌군주국으로 하는 새 헌법이 채택되었고,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이 크메르루즈를 제외한 모든 주요 정당들이 참여한 연립정부를 통할하게 되었다.

말라리아, 주혈흡충증과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며, 영양실조가 만연되어 있다. 초·중등학교와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6∼12세를 대상으로 의무교육이 실시된다.

캄보디아의 전형적인 아파트.  프놈펜(Phnom Penh)에 위치
캄보디아의 전형적인 아파트. 프놈펜(Phnom Penh)에 위치

문화

캄보디아의 문화는 과거의 풍부한 유산, 특히 앙코르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앙코르 시대(802∼1432)의 건축과 조각을 통해 전해내려왔다. 이 건축과 조각 유물들은 다른 문화 유적들과 함께 파괴·약탈·관리소홀로 큰 피해를 입었다.

앙코르사원의 회랑
앙코르사원의 회랑

역사

BC 2000∼1000년 동안 지금의 캄보디아에는 신석기인들이 살았다.

크메르 문명은 여러 시대에 걸쳐 발전했다. 첫번째 시대는 서력기원초에 시작되어 8세기까지 이어진 힌두-불교 소왕국 푸난과 첸라가 지배하던 시대이다. 첸라 왕국은 6세기말에서 7세기초에 걸쳐 푸난왕국을 제압하고 세력을 떨치다가 9세기초에 무너지고, 자야바르만 2세의 영도하에 앙코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왕조 시대를 크메르 문명의 고전시대(802∼1432)라고 한다.

자야바르만은 앙코르 지역을 수도로 삼았으며 자야바르만과 그 후계자들은 이 수도에 위대한 건축물들을 세웠다.

크메르 제국의 세력은 앙코르와트의 사원들을 세운 12세기 수리아바르만 2세 시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군대는 서쪽으로 멀리 시암 북부(지금의 타이 북부)지역까지, 동쪽으로는 홍하(紅河) 삼각주(지금의 베트남에 있음)까지 진격했다. 크메르 제국의 국력은 잘 발달된 벼농사의 관개체계와 정교한 관료제도를 통한 인력 통제에 그 기초를 두고 있었다. 13세기초 자야바르만 7세는 그의 선왕들보다 훨씬 멀리까지 제국을 확장했으나 13∼14세기에 제국은 급속히 무너져갔다.

앙코르 와트(Angkor Wat)
앙코르 와트(Angkor Wat)
수리아바르만 2세 (Suryavarman II)
수리아바르만 2세 (Suryavarman II)

나약한 왕들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비롯된 내정 불안으로 크메르는 이웃 국가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불교가 힌두교에 바탕을 둔 국가의 위계 질서를 허물기 시작하자 어려움은 더욱 심해졌다. 15세기에 이르러 크메르인들은 더이상 수도 앙코르를 방어할 수 없었다. 그후 400년 동안은 정치적·사회적인 쇠퇴기로 베트남이나 시암과의 전쟁이 잦았다. 여러 차례 크메르의 왕들은 이 나라 저 나라의 봉신(封臣)이 되었다.

1864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됨으로써 크메르의 정치적인 안정이 회복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연방 내의 한 자치국이 되었다.

전쟁중 일본군이 점령했으나 크메르에 있던 비시 프랑스 정부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1941년 프랑스는 노로돔 시아누크 공을 캄보디아 왕위에 앉혔다. 195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으며 다음해에 시아누크 정부는 캄보디아의 합법적인 정권으로 승인을 받았다. 베트남 전쟁에서 시아누크는 어느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나름대로 현명하게 행동했으나 국내에서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묵인하는 것에 반대한 론 놀 장군과 다른 반대파들에 의해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론 놀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베트남인과 크메르루즈라는 작은 공산주의 단체를 탄압하자 캄보디아는 내부적으로 분열되었다. 1970년대초 캄보디아 거의 전역에 대한 광범위하고 대규모적인 미국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국민 대부분이 정부를 멀리하게 되었으며, 크메르루즈군은 새로운 지원자들에 의해 세력이 막강해졌다. 미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론 놀 정부는 1975년 크메르루즈에 의해 무너졌다. 1976년 민주 캄푸치아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며, 중국의 지원을 받은 크메르루즈의 지도자 폴 포트가 총리가 되었다.

그 다음해에 캄푸치아 공산당은 국가의 통치기구로 공식 승인되었다.

1975년 크메르루즈군은 프놈펜을 점령한 후 주민들을 곧 피난시켰으며, 다른 도시의 주민들은 농촌지역으로 강제로 보내거나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광대한 규모의 관개공사와 다른 공공 토목공사에 배치했다. 그 당시는 전국적으로 비참한 생활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다.

교육받은 중산계급과 정부의 적으로 보이는 사람들 모두를 대상으로 한 크메르루즈군의 조직적인 소탕작전은 1979년까지 최소한 100만 명의 캄보디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크메르루즈는 강대한 이웃 베트남에게도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이에 자극을 받은 베트남이 1979년 캄보디아를 군사적으로 침략했다. 베트남군은 크메르루즈를 서부 내륙지역으로 몰아내고 주로 크메르루즈로부터 이탈한 자들로 이루어진 예속적인 캄보디아 정부를 세웠다.

이 사회주의 정부는 이전의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했으나 정부가 기울인 재건의 노력은 외국원조 부족과 캄보디아인 숙련기술자, 전문가의 부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크메르루즈 게릴라군과 베트남이 지원하는 캄보디아 정부, 그리고 왕정주의자 및 반공주의자 파벌들간에 전투가 계속되었다.

1991년 UN의 보호하에 대부분의 캄보디아 파벌 당사자들이 참여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1993년 UN 감독하의 과도정부는 자유선거를 실시했고, 곧이어 시아누크가 군주의 지위에 복귀해 연립정부를 이끌면서 크메르루즈와 대치하게 되었다.

캄보디아와 한국과의 관계

캄보디아와 대한민국의 국기
캄보디아와 대한민국의 국기
외교

캄보디아는 1964년 한국과 무역협정을 맺고 1970년에는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도 했으나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으면서 1975년 4월 단교 조치됐다. 1997년 공식 외교관계가 재개되면서 활발한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과는 1964년 12월 20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문했다. 캄보디아에서는 2001년 훈 센 총리가 공식 방한을 시작으로 2006년, 2008년, 2014년에도 방한해 정상과 회담을 가졌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01년 최초로 한국의 대캄보디아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돌파한 후 수출액은 2003년의 이라크 사태 때를 제외하고 2015년까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후 2015년 0.3%, 2016년 12.2%가 감소하며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가장 비중이 큰 직물제품을 시작으로 전자기기, 기타 섬유제품 등이었지만 최근 전자기기와 섬유제품의 수출량이 줄면서 대신 국산담배와 음료가 대세를 이끌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캄보디아 수출액은 4억 7,362만 달러이며, 대캄보디아 수입액은 3억 8,423만 달러이다.

한국과 캄보디아는 2008년 FTA를 공식 발효해 이행하려고 했으나 캄보디아가 동남아시아 최빈국이라는 이유로 잠정 유예됐다. 캄보디아는 1999년 ASEAN에 가입해 한국과 한국-ASEAN FTA 상품협정 발효(2008), 무상원조 기본협정 서명 및 발효(2009), 한국-ASEAN FTA 투자협정 발효(2010)를 체결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01년 한국-캄보디아 문화교류계획서가 서명된 이후로 한국은 국악 공연단 방문 공연, 전통무용단 공연, 국립발레단 공연 등 한국의 문화를 나타낼 수 있는 문화공연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 역시 로열 발레단 방한 공연 등을 진행하며 2006년부터 캄보디아 대사관 주최로 한국영화제를 개최하면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캄보디아에 전파하는 등 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023년 기준 캄보디아에는 일반체류자와 유학생을 포함해 7,800명의 재외동포가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 등록외국인은 2023년 기준 47,138명이다.

참고문헌

  • ・ 코트라
  • ・ 외교부
  • ・ 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