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바르만 2세

수리아바르만 2세

다른 표기 언어 Suryavarman II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1150경
국적 크메르

요약 크메르의 왕.

종교개혁과 사원건축으로 유명하다. 통치하던 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건축물인 앙코르 와트를 세웠다.

1113년 무렵 경쟁자를 물리치고 왕위에 올라 50년 이상 계속된 혼란상을 끝내고 분열된 국가를 다시 통합하여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절대 지배체제를 정착시켰다. 호전적이고 야망이 컸던 그는 현재의 타이 영토와 비슷한 정도로까지 영토를 넓혀놓았다.

왕국의 경계는 서쪽으로 멀리 파간의 미얀마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타이 해안, 동쪽으로는 지금의 베트남 남부지역에 있는 참파 왕국에까지 이르렀다. 말레이 반도 동부해안 일부도 자국영토로 만들었다.

수리아바르만은 자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사제였던 디바카라판디타의 도움으로 1113년 공식적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은 최고신인 비슈누와 시바를 모시는 힌두교의 여러 신비종파를 결합시켰으며 과거 얼마 동안 번영한 불교 대신 비슈누교를 공식국교로 선포했다. 비슈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세운 앙코르 와트는 수리아바르만의 통치 초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그가 죽을 때까지도 완성되지 못했다.

벽과 해자(垓字)로 둘러싸여 있는 사원 건물들은 그를 비슈누 신으로 묘사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조각들은 그가 군대를 사열하고 사람들을 접견하는 등 군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1116년 수리아바르만은 9세기 이후 중단상태에 있던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회복시켰다. 중국은 1128년 공식적으로 캄보디아를 중국의 속국으로 인정했다. 중국에 공물을 보냄으로써 그는 주변 동남 아시아 왕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동맹자를 얻었고, 중국이 크메르 국내문제에 개입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1123~36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939) 베트남 왕국 다이 비에트[大越]를 정벌하기 위해 계속 원정에 나섰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128년 라오스를 거쳐 응게안까지 육로공격을 했으나 패하고 말았다.

몇 달 뒤 수리아바르만의 정크선(船) 700대가 통킹 만에서 해안을 따라 베트남에 대한 장기적인 침공을 시작했다. 그는 참파 왕국에 원조를 강요했으나 1136년 참 왕 자야 인드라바르만 3세는 망명하여 베트남과 동맹을 맺었다.

이에 따라 수리아바르만은 1144년 참 왕을 폐위하고 이듬해 참파를 합병했다. 참족은 새로운 왕인 자야 하리바르만 1세의 지휘 아래 베트남 남부 판랑 근처의 차클링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크메르군을 격퇴했다. 수리아바르만은 처남 하리데바를 참 왕으로 옹립했으나 자야 하리바르만 1세는 그를 폐위하고 자신이 왕위에 앉았다.

1150년 수리아바르만은 다시 참파 정벌에 나섰다가 도중에 죽었으며 백성들은 전쟁으로 지쳤고, 한때 피정복민이었던 참족으로부터 반격을 받아 앙코르까지 약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