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교

증산교

다른 표기 언어 甑山敎

요약 1902년 강일순(姜一淳:1871~1909)이 개창한 종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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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창시와 연혁
  2. 교리와 사상
  3. 경전과 종교의식
  4. 현황
증산교
증산교

이 종교는 교조의 사후에 많은 분파가 생겨났는데, 일반적으로는 이 분파된 종단들을 통칭하여 창시자의 호를 따서 증산교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흠치교(吽 哆敎)라고도 했다.

증산교는 한말 개항기에 나타난 동학·대종교와 함께 이 땅에 새로운 이상세계를 건설한다는 후천개벽을 주장한 대표적인 자생적 종교의 하나이다. 또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문화, 특히 무속과 선도를 계승·발전시켜 한국 민중의 개인적인 신앙의식을 민간 중심의 공동체 신앙으로 승화시켰다.

창시와 연혁

증산교
증산교

창시자 강일순은 몰락한 양반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윤택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한 후 처남집에서 훈장노릇을 했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때는 동학군을 따라다녔지만 전쟁의 실패를 예언하고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다음 3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사회의 실상과 민중의 생활을 살핀 후 민심을 수습함에 있어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인간의 인위적인 힘이나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기성종교로서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1901년 전주 모악산에 들어가 도를 닦기 시작하여 그해 7월 5일 성도했다.

1902년부터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훈화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고통 속에 있는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땅·인간의 삼계대권을 가지고 이땅에 금산사 미륵불로 강림했다고 했다. 또 세상의 혼란을 괴질로 비유하고 자신이 세상의 모든 병을 대속했으나 오직 괴병만은 남겨두었다고 했는데, 예언과 병든 세상을 고치는 의통을 세상구원의 수단으로 삼았다.

당시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천지개벽을 통한 지상선경이 하루 빨리 도래되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1909년 그가 죽자 그의 허망한 죽음을 보고 대부분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고 해산해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2년 뒤 강일순의 아내였던 고부인이 갑자기 졸도한 후에 강일순과 비슷한 언행을 하게 되었다. 이에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은 강일순의 영이 고부인에게 강림했다 하여 다시 모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교단인 선도교가 형성되었다.

이 교단의 교세가 확장되자 강일순의 추종자였고 고부인의 이종사촌 동생인 차경석이 고부인과 신자들의 접촉을 차단하고 교권을 장악하여 교명을 보천교로 바꾸었다. 그러자 강일순의 추종자들은 그의 법통성을 부정하고 각자가 교통을 받았다 하여 새로이 교단을 만들어 분리해 나갔다. 고부인의 태을교, 김형렬(金亨烈)의 미륵불교, 안내성의 증산대도교 등의 교단이 그것이다.

이러한 분열 가운데서도 당시에 급속한 성장을 한 것은 차경석의 보천교였다. 차경석은 교세가 늘자 1919년 전국적으로 60방주라는 교구를 두었으며, 수백만의 신도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에 차경석은 1921년 함양군 황석산에서 천자등극을 위한 천제를 올렸으며, 당시 많은 이들이 차경석을 차천자라고 불렀다. 그러자 조선총독부에서는 보천교 신자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교인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이같은 탄압이 계속되자 차경석은 친일행각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교단 내에서 심한 반발을 받게 되었고 보천교 혁신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일부 간부들이 이탈하여 서울대법사·삼성교 등 새 교단을 만들었다.

한편 보천교에서 분파된 교단 이외에 강일순 추종자의 교단에서도 순천교·태극도 등 새로운 분파가 생겼다. 일제강점기에 증산교는 한때 100여 개에 달했으나 1938년 총독부의 유사종교 해체령이 내려진 이후 교단이 소멸되거나 대부분 지하로 잠적하고 말았다.

교리와 사상

각 종단의 교리와 해설에 강조점이 달라 약간의 차이는 나지만 공통적인 핵심은 천지공사(天地公事)이다.

천지공사란 선천(先天)의 낡은 천지(天地)를 뜯어고쳐 후천선경 세계를 열기 위한 천지개벽의 작업인데, 이러한 천지공사의 주재자(主宰者)가 바로 구천상제(九天上帝)인 강일순이다. 교리에 따르면 강일순은 천계의 대권(大權)을 주재하는 절대신으로 구천에 있다가 천계의 신성불보살(神聖佛菩薩)들이 모여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하소연함으로써 이 세상에 내려와 둘러보다가 조선땅에 이르렀고, 전라도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彌勒金像)에 임하여 30년을 보내면서 수운(水雲:崔濟愚)에게 천명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했으나, 수운이 인간세계를 구원할 참 빛을 얻지 못하므로 스스로 강림했으며, 그 자신이 직접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개벽을 하고 불로장생의 선경을 열어 고해에 빠진 중생을 구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삼계는 천지도수(天地度數) 또는 운도(運度)에 따라 운행되며, 이 운도는 음양상수(陰陽象數)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예정된 천지간의 변동의 원리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세계의 역사변동을 이 운도에 따라 현대 이전을 선천(先天)으로, 앞으로 전개될 세계를 후천(後天)으로 구분하고, 현대사회는 선천과 후천이 교체되는 시기, 즉 말세(末世)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역사변화의 원리는 이미 짜여진 운행법칙이라서 인간능력으로 조정될 수는 없고, 오직 삼계대권을 가지고 있는 강일순의 권능으로만 조정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현재는 선·후천 교역기인 말세의 시대이기 때문에 선천시대의 상극의 천계로 인해 그동안 누적된 신명계와 인간계의 원한과 살기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신명계와 인간계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인데 현대에는 신명계가 극도로 혼란되어 있어 인간계의 조정을 위해서는 신명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기성종교들이 각 민족의 문명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에 사회판도가 넓어진 오늘날에는 인간의 참 길을 열어주지 못한다고 하고, 따라서 천지공사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근원적인 혼란을 해소하기 위한 인류구원사업이라고 주장한다.

천지공사는 목적에 따라 운도공사(運道公事)·신도공사(神道空事)·인도공사(人道空事)의 3가지로 분류된다.

운도공사는 천지간에 예정된 변동의 원리와 천지의 도수를 고치는 작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시 말세의 운도를 조정하는 세운공사(世運公事), 각종 재액(災厄)을 제거함으로써 제세구민하는 액운공사(厄運公事), 각 종교의 진수를 모아 무극대도를 만드는 교운공사(敎運公事), 각 지방의 지운을 조정하는 지운공사(地運公事)가 있다.

신도공사는 원한을 품고 죽은 신명들의 원한을 제거해줌으로써 신명계의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신명의 원한을 제거하는 해원공사(解寃公事)와 신명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신명의 배치와 지방과 민족에 따라 이질성을 나타내는 신명을 통일시키는 통일신단구성이 포함된다. 인도공사에는 말세운도에 처해 있어 앞길을 찾지 못하는 인간에게 수련을 통하여 신명과 동화하는 신화도통(神化道通)과 후천시대 윤리도덕을 닦도록 하는 윤리적 이념이 제시된다.

신화도통의 방법으로 주문을 외우며 기도하고 수련하는 방법이 강조되며, 새로운 윤리관으로는 인존사상(人尊思想)과 해원상생사상(解寃相生思想)이 그 이념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모든 재앙이 선천시대의 법리인 상극이치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원한 때문이므로 후천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원한을 깨끗이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미 천지공사로 후천선경이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더이상의 원한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해원상생의 이념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원한을 해소하는 데는 모든 원한의 시초인 최초 원한을 풀어줌으로써 그뒤로 쌓여온 모든 원한을 풀 수 있다는 원시반본사상(原始返本思想)을 제시했다. 또한 신이나 그밖에 어떤 사물보다도 인간이 가장 존엄한 존재라는 인존사상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후천시대의 하나의 특성으로 언급되고 있다. 인간은 지금까지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았던 신보다도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인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 일을 꾸미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고 했는데, 후천에서는 하늘이 일을 꾸미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인간'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존사상 속에는 계급타파사상과 남녀평등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경전과 종교의식

경전으로 가장 먼저 출판된 것은 〈증산천사공사기 甑山天師公事記〉이다.

이 경전은 보천교 혁신계를 주도했던 이상호(李祥昊)가 보천교를 탈퇴한 후 강일순의 추종자들에게서 들은 강일순의 행적을 모아 1926년 간행한 책이다. 역시 이상호에 의해 저술된 경전인 〈대순전경 大巡典經〉은 〈증산천사공사기〉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1929년에 초판이 발간되었으며, 현재 9판에 이르고 있다. 8·15해방 이전까지는 대체로 〈대순전경〉이 두루 사용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각 종단들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경전들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생화정경 生化正經〉(삼덕교, 1954)·〈중화경 中和經〉(미륵불교, 1955)·〈선도진경 宣道眞經〉(태극도, 1965)·〈증산대도전경 甑山大道典經〉(법종교, 1970)·〈전경 典經〉(대순진리회, 1970)·〈교전 敎典〉(보천교, 1981)·〈증산도성전 甑山道聖典〉(증산도중앙총무부, 1988) 등이다. 이들 경전은 대체로 〈대순전경〉을 토대로 하면서 자기 종단 창시자의 행적과 가르침을 아울러 수록하고 있다.

의식은 각 교파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천지공사에 관련된 것은 대체로 공통적이다. 증산교의 1차적인 신앙대상은 상제인 강일순이며, 그외에도 환인·환웅·단군 등 한국 시조신과 각 민족의 민족신, 공자·석가모니·예수 등과 같은 문명신, 모든 사람의 조상인 신령신(神靈神), 그리고 최제우,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震默大師) 등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느 교파에서나 강일순이 천지공사를 행할 때 사용했다는 송주(誦呪)와 소부의식(燒符儀式:부적을 태우는 의식)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송주는 수련 때와 치성드릴 때 행해지는데, 주문을 외우면 개안이 되어 신명계와 인간계 모든 현상을 보게 되고,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게 된다고 한다. 주문에는 강일순이 구도생활에서 얻은 태을주(太乙呪), 동학의 시천주(侍天呪), 그리고 칠묵주(七墨呪)·오주(五呪)·진법주(眞法呪)·도통주(道通呪)·갱생주(更生呪)·개벽주(開闢呪) 등이 있다. 이들은 소부를 하면 귀신을 내쫓고 병을 낫게 하며 죽은 사람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현황

일제강점기에 한때 100여 개에 이르던 교단이 일제의 종교탄압에 의해 해산되기도 하고, 지하화되었다가 해방 이후 새로이 흥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통성을 주장하는 많은 증산교단이 발흥하여 난맥을 이루었으며, 일부에서는 교단통합운동을 펴기도 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해방 이후 이들은 증산교단통정원·증산대도회·동도교·증산종단친목회·증산종단협회·증산종단연합회 등의 이름으로 여러 차례 연합조직을 형성했으나 교파 통일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1950년 후반에는 태극도에 의해 주도된 말세론적 신앙이 사회의 비난을 받았고, 1960년대에는 자체 정비와 도태과정을 겪는 한편, 이상호·이정립 형제에 의하여 경전 발행작업이 진행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학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의 정신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때 증산사상연구회가 주도하여 1975년부터 〈증산사상연구〉를 발간하기 시작했고, 1974년 증산도장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무렵 50여 개의 교단이 난립되어 있는 가운데 주요교단으로는 증산교본부·태극도·대순진리회·증산진법회·증산도 등이 세력을 확장했다.

증산교로서 최대 종단인 대순진리회는 1972년부터 종단 3대기본사업을 포덕·교화·수도로 정하고, 주요사업으로 구호자선·사회복지·교육사업 등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대순진리회를 이끌던 교주 박한경이 1996년 1월 사망한 뒤, 교단이 깊은 분열의 양상을 보이면서 신도들도 박한경이 세웠던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도장과 여주본부도장 등으로 나뉘어졌고, 그 아래 많은 유파로 분리되어 통합된 규모를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만 대순진리회에서 이미 설립한 교육기관과 복지시설이 유지되고 있다. 중원대학교, 대진대학교, 대진고등학교, 대진여자고등학교, 분당대진고등학교, 일산대진고등학교,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대진정보통신고등학교, 분당제생병원 등이 대순진리회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