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순

강일순

다른 표기 언어 姜一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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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71. 9. 19, 전북 고부
사망 1909. 8
국적 한국

요약 증산교 창시자. 교단의 창시자로서 뿐만 아니라 절대자 또는 상제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저서로 후천세계를 예언한 <현무경>이 있다. 21세에 절름발이인 부인과 결혼하여 한동안 처남의 집에 서당을 차리고 훈장생활을 했다. 당시 그의 학문은 높은 경지에 올라 한학은 물론 유·불·선의 경전과 음향·풍수·복서·의술 등에 막힘이 없었다. 동학혁명이 끝난 후 사회적 참상과 혼란을 목격한 그는 1897년부터 3년간 세상의 실상을 알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이때 김경흔으로부터 증산교의 중요주문이 된 태을주를 얻었고, 김일부에게 주역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1901년 31세 때 전주 모악산 동편 대원사에 들어가 기도와 이적을 행하던 중 천지의 현법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1909년 죽을 때까지 7년간 모악산을 중심으로 포교에 힘썼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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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출생과 배경
  3. 활동
  4. 종교적 삶

개요

본관은 진주. 자는 사옥(士玉), 호는 증산(甑山).

출생과 배경

〈대순전경 大巡典經〉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 권씨는 하늘이 남북으로 갈라지며 큰 불덩어리가 내려와서 몸을 덮으니 온천하가 광명하여지는 꿈을 꾸고 나서 잉태했으며, 13개월 만에 그를 낳았다.

또 출산 때는 그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두 선녀가 내려와 산모를 간호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상한 향기가 온 집안에 그득하고 밝은 기운이 집을 둘러 하늘로 뻗쳐오르는 현상이 7일이나 계속되었다.

태어난 아기의 용모에는 위의(威儀)가 서려 있고 양미간에는 불표(佛表)가, 왼손바닥에는 별 무(戊)자가, 아래 입술에는 붉은 점이 있었다. 그는 몰락한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대단히 가난하여 일찍이 학업을 중단했다.

21세에 절름발이인 부인과 결혼하여 한동안 처남의 집에 서당을 차리고 훈장생활을 했다. 이당시 그의 학문은 높은 경지에 올라 한학은 물론 유·불·선의 여러 경전과 음향·풍수·복서·의술 등에 막힘이 없었다.

활동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농민군을 따라다녔으나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여한 사람들에게 이 싸움은 실패할 것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했다. 동학혁명이 끝난 후의 사회적 참상과 혼란을 목격한 그는 국가와 민족, 세계와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천지의 대도를 얻고자 결심했다. 이후 그는 1897년부터 3년간 세상의 실상을 알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이 기간에 충청남도 비인(庇人) 사람인 김경흔(金京訢)으로부터 증산교의 중요주문이 된 태을주(太乙呪)를 얻었으며, 연산(連山)에서는 김일부(金一夫)를 만나 주역(周易)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특히 김일부는 〈정역〉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신종교에 거의 예외없이 나타나는 후천개벽의 이론적 틀을 세운 사람인데, 그와의 만남은 강일순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증산은 이처럼 여러 종교의 교리에 몰두하는 한편 이보(耳報)와 영안(靈眼) 등 초능력을 배우기도 하고, 선후천(先後天)의 천기변화를 가늠하며 국제정세와 동서의 문화형태에 깊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이러한 구도기간중 그는 전혀 직업을 갖지 않고 방랑하며 이따금 기이한 능력을 보여 광인이나 기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종교적 삶

그는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할 권능을 얻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31세(1901) 때 전주 모악산 동편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가 수개월 간 송주(頌呪)하며 기도와 이적을 행했다.

그러던 중 6월 선정(禪定)에 들어가 9일 만인 7월 5일 홀연 오룡광풍(五龍狂風)하는 가운데 탐음진치(貪淫瞋癡)의 사종마(四種魔)를 물리치고 광명혜식(光明慧識)이 열리며 천지의 현법(現法)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1909년 화천(化天)할 때까지 7년간 모악산을 중심으로 포교하며 여러 차례 천지공사를 수행했다.

천지공사라는 것은 구천상제(九天上帝)인 강일순이 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계와 신명계의 모든 원한들을 해원시키고 우주의 운행질서인 천지도수(天地度數)를 고쳐 후천선경의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강일순이 화천할 때까지 그를 따르던 종도(宗徒)는 최초의 종도인 김형렬(金亨烈)을 비롯하여 모두 64명이었다. 강일순은 1909년 자신의 화천을 미리 예언한 다음 미래에 다가올 괴병을 극복할 수 있는 비법인 의통(醫統)을 전한 후 8월에 화천했다. 이후 그는 교단의 창시자로서 뿐만 아니라 절대자 또는 상제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저서로 후천세계를 예언한 〈현무경 玄武經〉이 있다. → 증산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