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다른 표기 언어 Uzbekistan 동의어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Republic of Uzbekistan
요약 테이블
위치 중앙아시아 중부
인구 35,673,804명 (2024년 추계)
수도 타슈켄트
면적 447,40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Republic of Uzbekistan)
기후 건조성기후
민족 구성 우즈베크인(80%), 러시아인(6%), 타지키스탄인
언어 우즈베크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이슬람교(88%), 동방정교(9%)
화폐 우즈베키스탄 숨 (UZS)
대륙 아시아
국가번호 998
GDP USD 40,259,000,000
인구밀도 80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uz

요약 중앙아시아의 국가. 1991년 소련에서 독립했다. 남동부 언어 혹은 차가타이어를 쓰는 이슬람 민족인 우즈베크족이 전인구의 7/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3세기 몽골족에 기원하며 14세기의 칸 우즈베크 통치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여러 민족들의 점령기를 거치면서 쇠퇴하였다. 1855∼76년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1924년 소련 내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이 세워졌다가 1991년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 세계 최대의 면화 생산국이며 천연 가스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중앙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기계와 중장비의 주요생산지이기도 하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
  6. 역사
  7. 우즈베키스탄과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우즈베키스탄의 국기
우즈베키스탄의 국기

1991년 소련에서 독립했다. 북쪽과 서쪽으로 카자흐스탄,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서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짧은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수도는 타슈켄트이다.

지도
우즈베키스탄

자연환경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데, 대체로 남서쪽의 아무다리야 강(고대 이름은 옥수스 강)과 북동쪽의 시르다리야 강(고대 이름은 자카르테스 강) 사이에 위치한다. 국경 내에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을 포함하고 있다. 남쪽과 동쪽에 기름진 오아시스와 높은 산맥이 있지만 국토의 거의 4/5는 햇볕에 말라붙은 평평한 저지대이다.

저지대는 중부와 서부에 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키질쿰(사막)으로 바뀌고 서쪽으로 향하면 우스튜르트 고원과 이어진다. 북서쪽에는 아무다리야 강이 복합삼각주를 형성하면서 아랄 해로 유입된다. 아랄 해 남부의 2/3는 우즈베키스탄과 면해 있다. 남동부에 있는 제라프샨 강 계곡은 우즈베키스탄 고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부하라, 사마르칸트 등의 역사적인 도시들이 있다. 전체 면적의 1/4에 달하는 동부 지역은 산맥과 산맥을 따라 흐르는 강의 계곡이 전형적인 지형을 이루고 있다. 협곡 중에는 토양이 기름지고 인구가 밀집된 곳이 몇 군데 있다.

기후는 아주 건조하고 대륙적인 성격이 뚜렷하다. 여름이 길고 따뜻하며, 겨울은 짧고 대체로 온화한 편이다. 여름 평균기온은 32℃이다.

강들은 남동부의 타지키스탄 및 키르기스스탄 산맥에서 발원하여 중부와 동부의 메마른 저지대를 북서방향으로 지나면서 관개에 이용되거나 증발되어 유량이 줄어들고, 여러 개의 지류들은 사막에서 말라버리거나 본류에 이르기 전에 관개용으로 사용된다.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의 물을 관개용으로 끌어다 쓰는 바람에 한때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던 아랄 해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아랄 해의 염도가 높아지고, 강에서 유입되는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수질이 오염되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우즈베키스탄의 많은 농경지가 혹사당하면서 염화 작용을 일으키고 화학적인 독성에 오염되고 있는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자연
우즈베키스탄의 자연

국민

남동부 언어 혹은 투르크어의 분파인 차가타이어를 사용하는 이슬람 민족인 우즈베크족이 전인구의 7/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인구의 1/10 미만이며, 타지크인·카자크인·타타르인·카라칼파크스인들이 소수 민족을 이룬다. 비교적 낮은 사망률과 매우 높은 출생률로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3,567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36%만이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15세 이하의 유소년 인구가 전체 인구의 28%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은 동쪽 끝에 있는 페르가나와 이에 연결된 계곡들, 그리고 남중부 지역의 제라프샨 강 계곡이다.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경제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의 주요 면화 재배국이며 세계 최대의 면화 생산국이다(목화). 카라쿨양 사육과 양잠업 또한 중요하며, 이외에 목축 및 멜론·포도 등 다양한 과일·야채 재배가 농업의 나머지 부분을 이룬다.

천연 가스의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며, 상당량의 석유·석탄과 다양한 금속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쿠라민 산맥에는 구리·아연·납·텅스텐·몰리브데넘 광상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기계와 중장비의 주요생산지이다. 화학 산업은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목화밭에 필요한 비료를 생산하는 한편, 면화 가공의 부산물과 폐기물로 여러 가지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우즈베키스탄 화폐
우즈베키스탄 화폐

정치와 사회

원래 소비에트 정부 형태를 근거로 했던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우즈베키스탄공산당(Communist Party of Uzbekistan/CPU)이 모든 부문에서 사실상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공산당(Communist Party of Uzbekistan/CPU)
우즈베키스탄공산당(Communist Party of Uzbekistan/CPU)

야당을 조직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나 나중에는 탄압을 받았고, CPU가 인민민주당(People's Democratic Party)으로 개칭하고 1994년 치러진 선거 이후에도 계속해서 권력을 잡고 있다. 1992년 헌법상 행정수반은 대통령이고, 입법기관은 최고회의다.

6∼14세는 의무교육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소비에트 통치의 붕괴를 전후로 한 몇 년 동안 공립학교 교과과정을 러시아식에서 우즈베키스탄식으로 변경하는 데 착수했다. 부하라·히바·사마르칸트에 있는 수세기 된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들은 소비에트 통치 기간 중 주정부의 재정에 의존했으며 지금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문화

여러 세기 동안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 문화의 중심으로 주목받아왔다. 이 지역 출신의 뛰어난 중세 학자로는 9세기의 수학자 무사 화레즈미, 10세기의 박학다식한 철학자 아부 레이한 알 비루니(973∼1048), 사마르칸트에 천문대를 세운 15세기 천문학자 울루그 베그, 15세기말의 시인 알리 시르 나바이가 있다. 소비에트 통치 기간중에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문화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즈베키스탄 이찬 칼라의 고대 모스크
우즈베키스탄 이찬 칼라의 고대 모스크

역사

우즈베크인들의 역사적 기원은 13세기 몽골족에서 시작한다. 13세기경 징기스칸의 손자인 시바칸은 시르다리야 북쪽, 즉 서쪽으로는 우랄 산맥과 동쪽으로는 이르티시 강 사이의 영토를 유산으로 받았다.

시바칸이 이끄는 몽골족은 '황금 군단'(Golden Horde : 몽골 제국 서부)의 일부분을 형성하고 거의 100개의 주요 투르크 부족들을 지배했다. 이 부족들이 결국 몽골족들과 혼인해 우즈베크인들과 중앙 아시아의 다른 투르크계 민족들이 되었다.

우즈베크라는 이름은 14세기의 칸 우즈베크라는 인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통치하에서 '황금 군단'은 전성기를 누렸으며, 약 1340년 이후 그가 통치했던 영토는 '외즈 베그(또는 우즈베크)의 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부 알 하이르 칸(1468년 사망) 통치 시대에 몽골-우즈베크인들은 남동쪽으로 이동해 시르다리야 북쪽 강안에 다다랐다. 아부 알 하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샤이바니 칸 통치 시대에는 16세기초 우즈베크인들이 결성한 부족 연맹이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정착 지역을 침입해 점령했고, 나중에는 우르겐치와 타슈켄트 지역까지 점령해 티무르 왕이 세웠던 옛 제국을 무너뜨렸다. 트란속사니아('옥수스를 넘어서')로 불리는 이 지역은 우즈베크인들의 영구적인 고향이 되었다. 이 시기에도 우즈베크인들은 단일혈통과는 거리가 멀어 고대 이란 지방 민족들의 후손, 투르크어를 쓰는 부족들, 몽골족 대군주들의 혈통이 섞여 있었다. 트란속사니아를 점령한 후 카를리크족과 위구르족 등 다른 부족들과의 혼혈이 심화되었다.

샤이바니의 우즈베크 왕조는 1598년까지 트란속사니아를 통치했고, 이후 이 지역은 여러 민족들의 점령기를 거치면서 점차 물질적 번영과 문화생활 수준이 쇠퇴하게 되었다. 19세기 무렵 우즈베크인들은 더 이상 정치적·민족적 결합체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며, 이들의 영토는 명목상 부하라·히바·코칸트 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이 세 지역은 1855∼76년 러시아가 팽창하면서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1924년 소련 내에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이 세워졌다. 소비에트 통치하에서 우즈베키스탄은 관개·기계화·화학비료·농약 등을 이용해 면화를 재배하는 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정책들은 우즈베키스탄을 주요 면화생산국으로 만든 반면, 심각한 환경 피해를 야기해 전체 우즈베크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었다. 1990년 6월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 중 최초로 소비에트 중앙정부의 법률에 대한 자국 법률의 주권을 선언했다.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

1991년 12월 실시된 최초의 대통령 직접 선거에서 CPU의 초대 서기관이던 이슬람 카리모프가 86%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카리모프는 집권 후 야당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야당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1993년에는 모든 야당에 대한 출판 금지령이 내려졌다. 이같은 인권 유린에 대해 외국 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항의가 있었으나 무시되었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우즈베키스탄과 한국과의 관계

우즈베키스탄과 한국
우즈베키스탄과 한국
외교

한국과는 1992년 1월 29일 수교했으며, 같은 해 2월 7일 북한과도 수교했다. 1993년 12월 21일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이 설치됐으며,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은 1996년 1월에 설치됐다. 1992년 카리모프 대통령의 방한을 시작으로 양국의 고위 인사간의 교류도 활발했는데, 카리모프 대통령은 1992년, 1995년, 1999년, 2006년, 2008년, 2010년, 2012년, 2015년 총 8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은 1994년 김영삼 대통령, 2005년 노무현 대통령, 2009년 이명박 대통령,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회담을 가졌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1992년 외교가 시작된 후 양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그 결과 굳건한 신뢰가 바탕이 되는 광범위한 경제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부품, 승용차, 합성수지, 농기계, 소프트웨어 등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우즈베키스탄 수출액은 20억 6,674만 달러이고, 대우즈베키스탄 수입액은 821만 달러이다.

주요협정체결 현황을 보면 투자보장협정, 무역협정, 과학기술협정, 사증발급양해각서, 1994년 6월 항공협정, 문화협정(1992), 교육협력양해각서(1995), 이중과세방지협정(1998), 세관분야 공조협정(1999), 범죄인인도조약(2004), 사회보장협정(2006), 외교관여권사증면제협정(2009) 등 여러 부문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우즈베키스탄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행사를 개최하는 등 한국에 대한 신뢰를 보이는 동시에 우즈베키스탄의 성과를 기대하며 양국의 체육 관련 분야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23년 기준 우즈베키스탄에는 174,490명의 재외동포가 있다.

참고문헌

  • ・ 코트라
  • ・ 외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