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키모

에스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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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에스키모라는 이름은 캐나다의 크리 인디언이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붙인 것인데, 그들 스스로는 '인간'을 뜻하는 이누이트라고 불렀다. 에스키모는 몽골계 종족으로 중키에 단단한 체구, 비교적 큰 머리와 넓고 평평한 얼굴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들은 손발 크기나 다른 신체적 특징면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과는 차이가 있으며, 인디언에게는 없는 B형 혈액형 보유자가 많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따르는 에스키모의 높은 신진대사율은 고기와 지방질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거주지역에 따라 동그린란드 에스키모, 서그린란드 에스키모, 북극 에스키모 등으로 나뉜다. 캐나다에서는 래브라도, 퀘벡, 배핀랜드, 매켄지 에스키모 등으로 구분되고, 알래스카에서는 베링 해 에스키모 등 몇 집단으로 나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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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통문화
    1. 개요
    2. 북에스키모
    3. 태평양 에스키모
  2. 현재 지위
에스키모
에스키모

알류샨 열도와 알래스카 반도 서부의 알류트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교적 순수한 혈통을 간직하고 있는 에스키모알류트족의 인구는 1980년에 약 11만 명으로 조사되었는데, 그 분포는 그린란드·덴마크에 약 4만 5,000명, 알래스카에 약 4만 명, 캐나다에 약 2만 5,000명, 시베리아에 약 1,000명으로 나타났다.

다른 주민과의 혼혈 인구를 더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에스키모라는 이름은 캐나다의 크리 인디언이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붙인 것인데, 그들 스스로는 '인간'을 의미하는 이누이트라고 불러왔다. 에스키모는 몽골계 종족으로 중키에 단단한 체구, 비교적 큰 머리와 넓고 평평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손발 크기나 다른 신체적 특징면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으며, 인디언에게 전혀 없는 B형 혈액형 보유자가 상당히 많다. 이때문에 현대 학자들은 적어도 에스키모의 일부분이 아메리카 인디언들과는 완전히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이 북극의 추운 기후에 유전학적으로 적응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따르는 에스키모들의 높은 신진대사율은 유전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고기와 지방질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거주지역에 따라 동(東)그린란드 에스키모, 서(西)그린란드 에스키모, 북극 에스키모 등으로 나뉜다. 캐나다에서는 크게 래브라도 에스키모, 퀘벡 에스키모, 배핀랜드 에스키모, 매켄지 에스키모 등으로 구분되고, 알래스카에서는 베링 해 에스키모 등 몇 집단으로 나뉜다. 에스키모어는 유피크어와 이누피아크어 등 2개의 주요어군으로 나뉘는데, 유피크어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남서부에서 쓰이고, 이누피아크어는 알래스카 북부, 캐나다, 그린란드 등지에서 쓰인다.

언어면에서 볼 때 매켄지 에스키모는 이누이트어의 서부 방언인 이누피아크어를 쓴다. 베링 해의 에스키모, 세인트로렌스 섬의 에스키모, 태평양 에스키모 등은 각각 유피크어의 방언을 쓴다.

전통문화

개요

일반적으로 에스키모 사회에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씨족이나 부족 같은 공식적 사회조직이나 추장이 없다.

에스키모는 경제적·사회적인 2개의 집단으로 나뉜다. 이중 북(北)에스키모는 겨울에 얼어붙는 해안지역에서 살며, 태평양 에스키모는 아(亞)북극의 태평양 연안에서 산다. 두 지역 어디에서나 순수한 전통생활방식은 찾아볼 수 없다.

북에스키모

툴레 문화를 발전시킨 조상들로부터 전통을 이어받아 주로 바다나 육지의 자원을 이용하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계절에 따라 순록이나 물고기를 잡거나 바다표범 등을 사냥했고, 겨울 동안의 식량을 비축했다. 대부분의 겨울집은 목재나 고래뼈로 틀을 짠 뒤 돌이나 뗏장으로 덮은 반지하의 집이었다. 알래스카에서는 집 중앙에 나무로 불을 피웠다. 그러나 북부와 그린란드에서는 나무 대신에 몸집이 큰 바다 포유류의 기름을 연료로 사용했다.

중부 에스키모와 퀘벡 에스키모는 겨울에는 이글루라는 눈집에서만 살았다. 알래스카 북부의 순록을 사육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중의 돔형 천막에서 살았다. 이러한 주택에는 보통 대가족이 함께 거주했다. 그린란드 동부와 서부에서는 50여 명이 함께 살 수 있는 돌집이 일반적이었으나, 그린란드 극지방의 에스키모는 돌집에서 핵가족별로 거주했다.

교통수단으로는 카약과 우미악이 일반적으로 쓰였다. 카약은 물개를 사냥하는 데 이용되었고, 우미악은 운반수단이었으나 고래나 해마 사냥 지역에서는 사냥할 때도 이용되었다. 겨울의 교통수단은 개가 끌거나 개와 사람이 함께 끄는 개썰매였다. 육지의 사냥에서는 보통 활과 화살이 쓰였다. 해양에서 바다표범이나 바다코끼리를 잡을 때는 끝에 갈고리가 달린 창을 썼고, 카약으로 물개를 잡을 때는 비녀장보다는 미늘이 달린 창을 사용했다.

고래를 잡는 우미악에는 배의 주인(우미알리크)과 전문적인 작살꾼들이 탔다.

북에스키모의 사회조직은 계절에 따른 생존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요구되었던 주거이동의 유연성 같은 조건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부계와 모계혈통을 모두 따랐다. 사촌간의 결혼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일부 집단은 모계혈통보다 부계혈통을 더 중요시하기도 했다.

개인은 친족으로부터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얻었으며 외부인들과 접촉하기를 두려워했다. 이들의 사회에서는 교역을 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또는 사냥한 고기를 나누거나 일시적으로 배우자를 교환하는 경우에 형성되는 일종의 파트너 관계를 통해 혈연의 범위를 넘어서 개인들이 친족관계에서 얻는 안전함과 편안함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인트로렌스 섬과 시베리아의 에스키모는 부계씨족 단위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모든 개인은 씨족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세인트로렌스 섬에서는 같은 친족집단 내에서의 결혼이 허용되었으나 시베리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고래사냥을 하는 집단이 전부 같은 씨족원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냥집단의 지휘자는 씨족의 우두머리가 맡았으며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씨족집단의 우두머리가 촌장을 맡았다. 다른 북에스키모 사회에는 공식적인 추장의 지위가 없었는데, 알래스카 북부의 우미알리크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우미알리크는 고래사냥배의 소유주로서 고래사냥꾼들과 그 가족들의 후원자 같은 사람이었다.

우미알리크와 그의 고래사냥꾼들은 여러 가지 공동활동을 했다. 우미알리크의 지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었고, 사냥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맡았으며 자기가 직접 지휘하는 고래사냥꾼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권한도 없었다. 베링 해협의 남쪽 지역에서는 이에 상당하는 비공식적 체계가 북쪽에 비해 강력한 역할을 했지만 우미알리크라는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에스키모의 종교는 애니미즘적인 경향을 띠었다. 이들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에는 내세에도 일정한 관련을 맺으며 이어지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의 영혼은 다른 영혼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쉽고 인간이 영혼을 잃으면 질병에 걸린다고 여겼다(샤먼). 또 환생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죽은 근친의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되면 이 아이는 바로 죽은 그 사람이 되며, 생전에 그에게 붙여졌던 것과 같은 친족 명칭으로 불렸다. 갓 죽인 짐승에게 일정한 예를 갖추며 그 짐승이 같은 종류의 동물로 환생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태평양 에스키모

남에스키모에 해당하는 이들은 뗏장을 얹은 반지하의 집에서 살았고, 가죽을 덮은 카약과 우미악을 이용했는데, 어로와 사냥에 비슷한 도구를 사용했던 북에스키모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부계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공식적 추장이 있었고 주로 전쟁포로들로 이루어진 노예계급이 있었다. 코디액 지역의 에스키모들에게 북쪽의 에스키모 사회에 있는 것과 비슷한 추장 소유의 카심(남자의 숙소)이 있었다.

현재 지위

에스키모(Eskimo)
에스키모(Eskimo)

19세기 중엽 이후 백인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채집이나 사냥보다는 임금노동 또는 모피용 동물사육에 주력하게 되어 현재 에스키모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은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그린란드 에스키모는 1721년에 덴마크-노르웨이에 의하여 식민화되었다. 이들의 언어는 19세기말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며, 1862년에는 제한적인 지역 자치권이 주어졌다. 1905~29년에 그린란드 에스키모의 주요생계활동은 양의 사육과 대구잡이로 전환되었으며(그러나 아직도 사냥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학교에서는 덴마크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953년에 그린란드는 완전히 덴마크의 영토가 되었다.

캐나다 북부의 이누이트족은 1960년대 이후에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퀘벡 주 정부는 중앙정부로부터 퀘벡의 이누이트족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았다. 노스웨스트테리토리의 에스키모와 함께 이누이트족은 현재 의회에도 진출하고 있다.

에스키모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지면서 1977년 그린란드·캐나다·알래스카 등지의 원주민들로 이누이트 북극권 협의회가 구성되었으며, 1983년 국제연합(UN)에 의해 공식적으로 재조직되었다. 이 단체에서는 주기적으로 회의를 소집하여 일반적인 생활조건의 향상과 에스키모의 정치력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