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폐합

언론통폐합

다른 표기 언어 言論統廢合

요약 1980년대 신군부 집권세력기에 이루어진 한국언론에 대한 강압적이고 대대적인 개편조치. 이로 인해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통합되면서 중앙지는 총 6개가 되었고, <서울신문>은 조간으로 바뀌었다. 이 밖에 경제지와 지방지도 개편을 겪었다. 언론통폐합은 언론을 탄압하여 권력에 힘을 싣기 위한 당시 정권의 언론장악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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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용
  2. 성격과 영향
언론통폐합(言論統廢合)
언론통폐합(言論統廢合)

1980년 11월 14일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는 각각 임시총회를 열고 전국 신문·방송·통신사의 통폐합 등 한국언론계의 전반적인 구조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 신문은 중앙의 종합지 6개, 경제지 2개, 영자지 2개, 지방지 10개, 통신과 방송은 각각 1개사와 2개사로 보안사령부에 의해 강제 재편성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의 신문(28개사)·방송(29개사)·통신(7개사) 등 64개 언론매체 가운데 신문 11개사(중앙지 1, 지방지 8, 경제지 2), 방송사 27개사(중앙 3, 지방 3, MBC 계열 21), 통신사 7개사 등 모두 45개사의 매체가 통폐합 대상이 되었다. 통폐합 조치의 대상이 된 해당 언론사들은 11월 17일 사고를 통해 지상에 그 사실을 발표하고, 11월 15~30일의 모든 통폐합 작업은 당국에 의해 마무리됨으로써 12월 1일부터는 새로이 개편된 언론구조가 출범하게 되었다.

내용

통폐합 조치로 인해 중앙지에서는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되어 종래 7개였던 중앙지가 6개로 줄었고, 〈서울신문〉이 조간으로 변경되어 조간 3개지, 석간 3개지가 되었다.

경제지는 〈서울경제〉·〈일반내외경제〉가 각각 모기업인 〈한국일보〉·〈코리아 헤럴드〉에 흡수·통합되었으며, 〈현대경제〉는 〈한국경제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고 〈매일경제〉만이 그대로 석간으로 남게 됨으로써 경제지 역시 조간 1개지, 석간 1개지로 정리되었다.

지방지는 1도 1지 원칙이 적용되어 종래의 14개에서 〈국제신문〉·〈영남일보〉(경북)·〈경남일보〉(경남)가 각각 〈부산일보〉(이후 〈부산매일신문〉으로 개칭)·〈매일신문〉(이후 〈대구매일신문〉으로 개칭), 〈경남매일〉(이후 〈경남신문〉으로 개칭)로 흡수되고, 광주에서는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이 통합된 〈광주일보〉가 새로이 창간됨으로써 10개지로 줄었다.

통신사도 동양통신·합동통신 등 양대 통신이 해체되고 그 통합체로서의 연합통신이 출범했으며 시사통신·경제통신·산업통신 등의 군소통신사들 또한 이 단일통신사인 연합통신으로 흡수되었다. 특히 통신사와 관련해서는 각 언론의 지방(지방지의 경우는 중앙) 주재원을 없애고 연합통신에 의한 뉴스 배급만을 허용함으로써 지방 취재와 공급 창구가 일원화되었다.

이러한 통폐합과정에서 어느 부분보다도 큰 변화를 감당해야 했던 것은 방송이었다.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방송구조가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의 2대 방송망을 중심으로 하는 공영방송 전일체제로 재편성된 것이다. 이에 따라 동양방송(TBC)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KBS가 흡수 KBS 제2 텔레비전전과 KBS 제3방송으로, TBC FM은 KBS 제2FM으로 개편되었다. 또 정부비판에 앞장섰던 동아방송(DBS)은 KBS가 인수하여 KBS 제4방송, 라디오 서울로 개칭되었다.

이밖에 KBS는 TBC의 방송망이면서도 별도 법인체였던 서해방송전일방송도 인수하여 KBS 군산방송, KBS광주 제2방송으로 각각 명칭을 바꾸었고, 대구의 한국 FM은 KBS 대구 FM으로 변경되었다. 이와 더불어 종교방송인 CBS는 보도기능을 일체 없애고 본사를 포함한 지방국의 보도요원은 모두 KBS로 넘겨 순수 종교방송만 하게 되었다.

MBC는 각기 독립법인으로 프로그램을 제휴해오고 있던 21개 MBC 계열 방송사로부터 각각 51%의 주식을 양수해 이를 MBC의 지방 방송망으로 계열화시켰다. 그리고 KBS가 MBC의 주식 65%를 인수함으로써 사실상 KBS로 일원화된 방송구조가 이루어졌다. 특히 KBS는 MBC의 주식 외에도 〈서울신문〉 주식의 99%, 연합통신 주식의 30%, 한국 데이터 통신 주식회사 주식의 25% 등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언론통폐합을 통해 가장 거대한 언론조직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성격과 영향

통폐합 조치는 명목상으로는 언론단체들의 자율결의에 따른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언론인 강제해직과 더불어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신군부세력의 언론장악정책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취해진 것이다.

당시 통폐합의 표면상 지침은 ① 언론의 공익성을 구현하기 위한 언론구조의 자율적 개편, ② 언론기업의 발전과 체질강화, 공공성을 함양하기 위해 개인이나 영리 추구 법인의 신문과 방송 겸영 지양, ③ 주재기자제도의 폐지와 단일통신사를 통한 역외 뉴스 공급, ④ 언론인 처우의 개선, 제도화된 언론인 직업전문교육을 통한 언론인의 자질과 전문성 제고, ⑤ 언론에 대한 윤리심의 기능의 활성화 등으로 되어 있고, 실제 이 지침은 1980년 12월 31일 공포된 언론기본법에서 성문화되었다.

따라서 제5공화국 정부는 ① 전일화된 공영방송의 채택, ② 공익법인(특히 KBS)을 제외한 개인 또는 법인의 신문·방송의 겸영 금지, ③ 연합통신사를 통한 지방 뉴스의 취재와 공급 창구 일원화, ④ 언론연구원을 통한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의 마련, 언론인 보수의 획기적 인상, ⑤ 방송윤리워원회·신문윤리위원회 등을 통한 공식적 심의보다도 비공식적 검열제도 등을 언론정책의 골격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통폐합의 강제와 그 영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언론통폐합은 생존한 언론사들이 기존의 다른 신문이나 방송을 합병하여 대자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신설사를 배제함으로써 독점적인 이윤조건을 조성했다.

둘째, 생존한 언론사들에게는 언론사 경영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대신 통폐합 행사기관으로서의 정부는 시혜자의 입장에서 경영주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구도를 창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지방지들의 1도 1지는 이러한 통제구도를 효율화하는 데 기여했다.

셋째, 방송망은 KBS와 MBC의 이원적 구조였으나 소유 구조에서는 KBS 중심의 전일적 공영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리고 KBS와 MBC는 지방사들을 흡수·계열화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전국 네트워크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공영방송에 대한 의지에서였다기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이 큰 텔레비전 매체를 이용해 국민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동원하기 위해 종래 KBS의 국영적 성격을 재강화한 것이었다.

따라서 공영은 이러한 정치적 의도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고, 정권의 직접적 지배하에서 방송은 제5공화국 기간 내내 정권의 목소리만을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넷째, 언론통폐합은 지방 뉴스 공급 등을 일원화함으로써 정보통제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지침은 예산의 낭비, 사이비 기자문제 등을 야기해왔던 지사·지국의 언론부조리의 개선을 이유로 들고 있으나, 실제의 효과는 전국 지역정보의 효율적 축소·통제를 낳았다.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언론건전육성종합방안보고'에는 각 언론사의 해외특파원을 일원화하고, 공동 취재, 공동 기사작성 제도를 도입하며, 더 나아가 이들 해외특파원들을 준외교관 및 정보 홍보요원으로까지 활용하려는 전망까지 제시하고 있어 당초의 구상에는 외신 뉴스의 통제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언론통폐합은 같은 맥락에서 시행된 언론인 강제해직에 발맞춰 ① 언론인 처우개선, ② 언론인의 자질 향상과 전문성 제고 등을 내세우고 이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각각 방송광고공사(언론공익자금 조성)·언론연구원(언론인 재교육제도)을 신설함으로써 체제순응적·친정부적인 방향으로 언론인을 회유했다.

이로 인해 언론인의 보수는 1980년 이래 급속하게 상승했으며 갑종근로소득세(갑근세) 면제(기자의 경우), 공익자금을 통한 주택·생활 자금의 저리 융자, 해외시찰 및 연수, 각종 복리시설의 건립 등 여러 특혜가 주어졌다.

이와 같이 언론통폐합을 통한 언론의 구조적·제도적 개편은 언론사·언론인에 대한 독점적 이윤과 높은 보수의 보장, 이후의 공식·비공식 언론통제제도(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의 준수의무를 매개로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말살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체제 협력적 언론을 적극적으로 육성해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공영방송제도의 도입,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과 방송 겸영의 금지 등은 언론의 공적 책무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