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아일랜드

다른 표기 언어 Ireland , (아일)Eire
요약 테이블
위치 북대서양 북동부
인구 5,089,478명 (2024년 추계)
수도 더블린
면적 70,273.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Ireland
기후 해양성기후
민족 구성 켈트족, 영국인
언어 게일어,영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양원제
종교 로마가톨릭(88%), 아일랜드교회(3%)
화폐 유로 (€) 환율계산기
국화 토끼풀
대륙 유럽
국가번호 353
GDP USD 385,142,000,000
인구밀도 73명/㎢
전압 240V / 50Hz
도메인 .ie

요약 영국 본토 서쪽의 섬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 수도는 더블린으로 화폐는 유로이다. 켈트족과 영국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민 대다수의 종교는 로마가톨릭교이다. 대체로 농업·화학공업·서비스업에 기반을 둔 혼합시장경제 체제로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이웃한 서유럽 국가들보다 낮으나 대체로 선진국 수준이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예술
  6. 역사
  7. 아일랜드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아일랜드 국기
아일랜드 국기

수도는 더블린이고 섬은 남북으로 486km, 동서로 275km가량 뻗어 있다.

유일한 이웃은 섬의 북동부에 위치한 영국의 북아일랜드이다. 북아일랜드와의 국경선 이외의 경계는 해안선뿐이며 북쪽·서쪽·남쪽으로 대서양과 만나고, 동쪽으로는 영국과의 사이에 아일랜드 해와 세인트조지 해협이 있다.

지도
아일랜드

자연환경

아일랜드의 지형은 넓게 펼쳐진 평균 해발 60∼120m의 중북부 저지대와 이 저지대 주위를 거의 완전하게 둘러싸고 있는 해안가의 고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이 저지대 곳곳에 180∼300m 높이의 구릉, 호수, 습지, 낮은 준령들이 있다. 높이 200m 이상인 지역은 전국토의 15% 미만이다. 최고봉인 캐런투힐은 남서부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발 1,040m이다.

해안가에 펼쳐진 산악지대 가장자리에 생긴 유일한 단절이 더블린에서 시작되어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뻗어 있다. 대서양 쪽으로 돌출돼 있는 더니골·메이요·케리 산맥 등이 깊고 어귀가 넓은 만에 의해 나뉘는 서해안 쪽은 만입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 이 나라의 주요 강인 섀넌 강은 중부 저지대의 넓은 지역 슬라이고 만 근처의 고원지역에서부터 리머릭의 얕은 연안지대까지 259km를 남남서 방향으로 완만히 흐르면서 일련의 호수들을 형성한다. 국토의 2%가 내수이다.

기후는 매우 온화하여 더블린의 경우 1∼2월은 평균기온이 5℃ 이상이고 7∼8월은 15℃ 이하이다. 아일랜드 전지역이 바다로부터 110km 이내에 있어 멕시코 난류의 영향이 섬 전역에 미치기 때문에 온화한 기온을 유지할 수 있다. 서부와 남서부 고지대의 연간강수량은 2,500㎜이고 북동부에 있는 더블린은 750㎜이다.

이와 같이 강수량이 높고 1년 내내 날씨가 서늘하기 때문에 매우 습하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습한 기후와 낮은 고도로 인해 큰 이탄지가 생겨났다. 경작이 가능한 지역은 육지 면적의 1/8 미만이나 대부분이 매우 비옥하며, 넓은 초원에서는 상당수의 가축을 기른다. 삼림지는 국토의 5% 미만이며 이곳이 원산지인 야생 동물은 거의 없다. 구리·납·아연·은 등이 매장되어 있어 채굴이 가능하나 천연 자원이 풍부한 편은 아니다. 광활한 이탄층이 발전 연료로서 점차 중요해지고 있지만 매장량이 한정된 석유와 천연 가스가 여전히 주요 에너지원이다.

아일랜드 모허(Moher) 절벽
아일랜드 모허(Moher) 절벽

국민

역사적으로 아일랜드는 켈트족·스칸디나비아인·노르만족·잉글랜드인·스코틀랜드인 등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였지만 오늘날엔 사실상 인종적·민족적 차이가 없다. 인구의 95%가 로마 가톨릭 교도이고 그밖에 아일랜드 감독·장로·감리·유대 교회 등의 종교단체가 있다. 헌법상 아일랜드어가 제1공용어이며 영어는 제2공용어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며 모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출생률·사망률은 이웃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다. 1980∼85년에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비교적 낮은 1.1%였다. 이민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으며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달한다. 농업 부문의 고용 감소가 농촌에서 도시로의 광범위한 인구이동을 초래했는데, 서해안의 낙후된 지역은 특히 더 심했다. 2024년 추계인구는 508만 9,478명이며, 전 인구의 6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15세 이하 인구의 비율은 22%이다.

아일랜드의 국민
아일랜드의 국민

경제

대체로 농업·화학공업·서비스업에 기반을 둔 혼합시장경제 체제이다. 1980년대초에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다가 중반에 서서히 회복되었으나 실직자가 많았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이웃한 서유럽 국가들보다 낮으나 대체로 선진국 수준이다.

농업은 노동력의 약 1/8과 GNP의 1/10을 차지한다.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함으로써 아일랜드는 대규모 농산물 시장을 얻게 되어 농산물이 전체수출의 1/4 이상이 되었으나, 생산비 상승으로 농가수입이 줄었다. 아일랜드 정부가 충분한 공공 지원과 규제를 통해 개입하고 있으나 농업 부문의 고용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총농업생산은 특히 소를 비롯한 가축과 가축 생산물이 대부분이다. 그밖의 중요한 농산물로는 곡물, 가금류와 그 알, 사탕무, 감자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적으로 재식 사업을 펼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근해에 수산자원이 풍부하나 비교적 어업은 발달이 덜 된 상태이다.

1960년부터 광물자원을 탐광(探鑛)하여 여러 귀중한 광상을 발견·개발했다. 1977년 유럽 최대의 납-아연 광산이 내번에서 문을 열었다. 그밖의 광물 생산품으로는 석고·중정석·백운석·석회암·집성암 등이 있다.

코크 군 남쪽에 있는 대서양 근해 유전에서 약간의 석유와 천연 가스가 산출된다. 광업·제조업·건설업·공익사업 등이 GNP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4 가량이 이 부문에 종사한다. 산업개발부(IDA)는 종종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며, 특히 컴퓨터와 전자 회사를 비롯한 공업 부문의 확장을 적극 장려한다. 그밖에 중요한 공업은 화학, 금속 엔지니어링, 식품·섬유·담배 제조업 등이다. 서비스업 부문이 GNP의 2/5를 차지하며 비슷한 비율의 노동력이 이 부문에 종사한다. 전력 생산은 전체의 약 1/3을 이탄·수력·가스·석탄 등의 국내 자원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주로 수입연료에 의존한다.

관광업은 무역 외 순수익에서 가장 비중이 큰 부분이다. 관광객은 대부분 영국·북아일랜드·미국·서유럽 등지에서 찾아온다. 전통적으로 노조의식이 강하여 노동자의 약 절반이 노동조합에 속해 있으며 대다수의 노동조합은 아일랜드 노동조합회의(ICTU)의 회원이다.

1979년 유럽 통화제도를 채택하면서 화폐 단위를 영국 파운드에서 아일랜드 파운드로 바꾸었다. 1980년대 초반에 수입이 수출을 초과했으나 중반에 들어서 무역수지가 흑자로 들어섰다. 기계류, 운송기기, 화학제품, 광물성 연료 등이 주요수입품이며 주요수출품은 사무기기, 쇠고기, 전기기기, 기계, 낙농제품, 섬유, 살아있는 가축 등이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영국으로 수입의 약 2/5, 수출의 약 1/3을 차지한다. 그러나 EEC에 가입한 이래 다른 유럽 국가와의 유대를 더 강화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제
아일랜드의 경제

정치와 사회

아일랜드 공화국은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1937년 국민투표로 채택된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이며 1등 국민이다. 대통령의 임기는 7년으로 국민이 직접선거로 선출하고 재임이 가능하다.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총리가 이끄는 15명으로 구성된 내각의 조언에 따라 정치활동을 하며 특정한 업무를 행할 때는 자문기구인 국가평의회와 의논하여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총리의 권고가 있을 때 대통령은 의회를 소집·해산시킬 수 있으며,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제출할 수도 있다. 의회는 하원(Dáil)과 상원(Seanad)으로 양원제로 운영된다. 하원 의원수는 166명이며 최소한 5년마다 치르는 비밀투표에서 유권자가 선출한다. 상원 의원수는 60명이며 그중 11명을 총리가 뽑고 나머지는 직업적·경제적·문화적으로 다양한 유권자들이 선출한다. 하원은 법령의 제안이 가능하나 상원은 단지 그것을 지연시킬 수 있다. 피어나팔당, 통일 아일랜드당·노동당 등 3개의 주요정당이 있다.

임금연계 사회보험제도는 미망인·고아 연금, 실직·장애 수당,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을 위한 수당, 노인 연금 등을 뒷받침한다. 공공의료 서비스 비용은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다. 보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여 1인당 의사와 병상수가 많고 영아 사망률은 낮으며 평균수명은 73세로 비교적 높다. 6∼15세의 아동은 무상 의무교육을 받는다.

초등교육은 6년으로 졸업자는 중등학교에 등록하여 15, 16세에 중간 졸업증서(Intermediate Certificate)를, 17, 18세에 학습증서(Learning Certificate)를 받는다. 중등학교는 사립이며 초·중등학교는 거의 전적으로 종교 단체들이 설립한다. 고등교육기관 중 더블린대학교가 특히 유명한데 트리니티 칼리지라고도 한다. 언론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으나 로마 가톨릭교의 도덕성을 해치는 내용의 출판은 출판검열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아일랜드 코크(Cork) 시청
아일랜드 코크(Cork) 시청

문화예술

매우 성공적인 소설과 희곡 몇 편이 아일랜드어로 씌었으나 이 언어가 현대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전망은 희박하다. 반면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이 영어로 쓴 문학 작품들은 영문학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일랜드어는 18, 19세기를 거치는 동안 영향력을 잃어갔으나 이것에 대체한 영어권 문화에 끊임없이 강한 영향을 주었다. 이 언어만이 가진 전통적 사고와 독특한 표현들은 점차 영어에 흡수되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표현을 풍부하게 했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영어를 쓰는 조너선 스위프트, 에드먼드 버크, 조지 오거스터스 무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제임스 조이스, 새뮤얼 베케트 등의 대문인들이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아일랜드어
아일랜드어

역사

BC 6000년경 동해안에 사냥꾼과 어부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아일랜드에 정착지가 생기게 되었다.

켈트족은 BC 300년경 철기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켈트족이 살던 때에는 다수의 소왕국들이 느슨하게 결합하여 5개의 보다 더 큰 왕국 얼스터·미스·렌스터·먼스터·코노트를 이루었고 이 왕국들은 서력기원이 시작될 때부터 존재했다(투아하, 쿠이그 쿠이기). 5세기에 성 파트리키우스가 도착하여 이 나라 전역을 그리스도교화했다(로마 가톨릭교). 아일랜드 교회를 형성시킨 수도 생활이 대대적으로 발달했으며 선교사들이 유럽 전역에 파견되었다.

795년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침입하여 아나가산·더블린·워터퍼드·리머릭 등까지 지배했으나 1014년 아일랜드의 왕 브라이언 보루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이들의 통치가 종식되었다.

11∼12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교회개혁운동의 영향을 받아 교구에 의한 교회 운영이 확립되었는데 교구의 경계선은 대체로 기존 왕국들의 경계선과 일치했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가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고무를 받아 1171년 이 나라를 침략하여 자신을 섬 전체의 대군주로 선언하고,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이 사실을 인정받았다.

이로써 독립적이던 켈트족 아일랜드의 시대는 끝나게 되었다. 앵글로노르만족 정착민들은 켈트족 아일랜드 문화에 동화되어 갔으며 15세기에는 더블린 주위의 작은 지역인 팔레에서만 잉글랜드 왕실에 충성을 지켰다. 이 당시 아일랜드의 실제 지배자는 킬데어의 백작들로 이들은 공식적으로 잉글랜드의 대리 군주였다.

이런 상태는 16세기에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압력 때문에 아일랜드가 의회의 교회법을 따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150년 동안이나 군인과 성직자를 대륙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로 수출했으며 동시에 가톨릭 난민들이 빠져나가 비게 된 땅에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이주자들이 들어왔다. 1691년 퇴위한 왕 제임스 2세가 보인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신교도가 완전히 우세해졌다(신교 우세). 인구의 약 1/10에 불과한 영국성공회파 신도들이 국토와 정치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으며 가톨릭교도·장로파·비국교도 등에게는 기본적 시민권도 부여되지 않았다.

18세기에 아일랜드의 신교도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완화하는 것에 찬성하는 선동을 시작하면서 가톨릭교도에게도 약간의 시민권이 주어졌다. 1798년에 반란이 일어나 마침내 영국이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1801년 1월 1일에 대영제국과 아일랜드의 연합왕국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이 연합은 아일랜드에서는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가톨릭교도와 신교도간의 불화만 심화시켰다. 1846∼51년에 엄청난 기근이 발생하자 이 연합 때문에 침체된 경제가 더욱 악화되었으며 당시 200만 명 이상이 아일랜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이 기근 후에 피니언주의로 알려진 혁명운동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의회 개혁이 약간 이루어졌다.

혁명운동은 계속되었으나 몇몇 내정자치 조치는 실패했다. 1912년 또다른 내정자치 조치가 거의 통과될 즈음에 얼스터의 아일랜드 자치에 반대한 통일단원들이 내전을 준비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 폭동이 일어났으며 아일랜드 1916년에 임시정부가 선포되었다. 1920년 아일랜드 정부법이 채택되어 남·북 아일랜드가 성립되었고, 1921년 남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었다.

1937년 비준된 신헌법에 의해 왕권정치가 막을 내리고 국가명도 에이레로 변경되었다.

아일랜드 던루스 성
아일랜드 던루스 성

아일랜드와 한국과의 관계

아일랜드와 한국
아일랜드와 한국
외교

아일랜드는 한국과 1983년 10월에 공식적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한국은 1987년 7월에 주 아일랜드 한국대사관을 개설했으며, 아일랜드는 1989년 9월 2일에 주 한국 아일랜드 대사관을 개설했다. 양국 간의 교류로 한국 측에서는 1983년에 국제의원연맹 대표단이, 1986년에는 상공부차관이 이끄는 통상사절단이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이후 2004년 4월에 반기문 외교부장관, 2018년 5월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방문했다. 아일랜드 측에서는 1990년 9월에 콜린스 외무부장관, 2000년 11월에 아헤른 총리, 2005년 3월에 매컬리스 대통령이 방한했다. 한편 아일랜드는 북한과 2003년 12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아일랜드의 대한국 수출액은 13억 597만 달러, 수입액은 7억 4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의료용품, 면역물품, 광학기기 및 사진용 기기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원자로 및 보일러, 전기기기, 자동차 등이다. 한국은 아일랜드에 2017년 기준 누계로 6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2007년 5월에 협상 개시된 한국과 아일랜드의 자유무역협정(FTA)(한국-EUFTA)은 총 8차례의 협상을 거쳐 2015년 12월 정식 발효되었다. 이 밖에도 사증(비자)면제협정(1989년 7월), 이중과세방지협정(1990년 7월),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1993년 11월), 운전면허인정협정(1999년 2월), 사회보장협정(2002년 8월), 워킹홀리데이협정(2009년 12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아일랜드에는 더블린과 코크에 한글학교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아일랜드인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2011년 4월에 재아일랜드한인회가 결성되었다. 2023년 기준 아일랜드에는 1,176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625명의 아일랜드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