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등산

다른 표기 언어 mountaineering , 登山

요약 주로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산악지대에서 높은 지점에 올라가거나 오르려고 애쓰는 운동.
mountain climbing이라고도 함.

목차

접기
  1. 역사
  2. 기술
  3. 적성
  4. 등산장비
  5. 등산식량
  6. 등산에서의 조난
  7. 한국의 등산 역사
  8. 대상
암벽등반
암벽등반

등산은 오직 자연만을 무대로 하며, 거의 자연만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다른 옥외 스포츠와는 다르다. 위험은 등산이 갖추고 있는 고유한 속성으로서, 등산가는 이러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용기·기지·기량·체력·능력·정력 등을 힘껏 시험하며 짜릿한 전율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등산은 다른 스포츠보다도 집단활동의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각 대원은 모든 단계에서 자신이 속한 등반대의 목적달성을 위해 상부상조해야 한다. 대부분의 등산가들은 산꼭대기를 '정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강렬한 개인적인 노력, 꾸준히 숙달되는 기술, 웅장한 자연과의 접촉 등이 가져다주는 육체적·정신적 만족에서도 등산의 즐거움을 느낀다.

역사

옛날 사람들이 산꼭대기로 올라가려고 애쓴 것은 스포츠라기보다 다른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간 동기는 제단을 쌓거나, 오래 전부터 접근이 금지된 산꼭대기에 정말로 신령이 있는지를 확인하거나, 자신이 사는 고장이나 이웃 마을을 내려다보거나, 또는 기상이나 지형을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산꼭대기로 올라가려고 시도한 사실이 역사에 기록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18세기에는 자연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당시의 과학자였던 자연철학자들이 유럽의 알프스 산맥으로 현장답사 여행을 떠나는 일이 더욱더 많아졌다.

이들 과학자들은 몽블랑 산맥의 거대한 빙하 때문에 프랑스의 샤모니 주변지역에 특별한 매력을 갖게 되었다. 등산이 스포츠로서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제네바의 젊은 과학자인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가 1760년 처음 샤모니에 가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몽블랑 산(4,807m)을 보고, 언젠가는 그 산 정상에 올라가거나 그 산의 정복에 이바지하겠다고 결심했을 때였다. 그는 몽블랑 산을 처음 올라가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그 일은 26년이 지난 1786년에야 이루어졌다.

호레이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Horace Bénédict de Saussure)
호레이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Horace Bénédict de Saussure)
몽블랑 산에서 하강하는 사람들
몽블랑 산에서 하강하는 사람들

그가 내놓은 상금을 받은 사람은 샤모니의 의사인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와 짐꾼으로 고용한 자크 발마였다. 이듬해 소쉬르는 직접 몽블랑 산 정상에 올랐다. 1850년 이후 영국 등반대가 스위스·이탈리아·프랑스의 안내원들과 함께 스위스의 높은 봉우리들을 잇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의 발전에 이정표가 된 것은 1865년 7월 14일 영국의 화가인 에드워드 휨퍼가 이끈 등반대가 마터호른 산(4,407m)을 처음으로 오른 극적인 사건이었다.

19세기 중엽에 스위스에서는 등반안내인 동호회가 생겼으며, 이들은 중부 유럽 전역의 산봉우리로 오르는 길을 차례로 안내하면서 등산을 인기있는 스포츠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1870년에 이르러 알프스의 주요봉우리들은 모두 정복되었고, 등산가들은 이미 정복한 봉우리로 올라가는 보다 어렵고 새로운 코스를 찾기 시작했다. 알프스 산맥에 그때까지 미개간지로 남아 있던 몇 개의 낮은 봉우리들마저 모두 정복되자, 등산가들은 19세기말부터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북아메리카의 로키 산맥, 카프카스 산맥, 아프리카의 봉우리들, 그리고 결국에는 히말라야 산맥으로 관심을 돌렸다.

1897년 처음으로 안데스 산맥의 최고봉인 아콩카과 산(6,849m)에 올랐으며 1898년 북아메리카의 로키 산맥에 있는 그랜드티턴 산(4,124m)을 정복했다. 이탈리아의 아브루치 공작은 1897년 알래스카와 캐나다 국경을 가로질러 솟아 있는 세인트일라이어스 산(5,403m)을 처음으로 올랐고, 1906년에는 동아프리카의 루웬조리 산군(山群)에 속해 있는 마르게리타 산(5,039m)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루이지 아메데오의 아브 루치(Luigi Amedeo Giuseppe Maria Ferdinando Francesco)
루이지 아메데오의 아브 루치(Luigi Amedeo Giuseppe Maria Ferdinando Francesco)

1913년 미국의 허드슨 스턱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최고봉으로 알려진 알래스카의 매킨리 산(6,096m)을 정복했다. 보다 위대한 정복으로 가는 길이 차츰 열리고 있었지만, 마지막 요새인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20세기 중엽까지 기다려야 했다. 20세기가 지나면서 등산의 정확한 국제적 성격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중국·영국·프랑스·독일·인도·이탈리아·일본·소련 등은 점차 지구에서 가장 큰 산괴(山塊)인 히말라야 산맥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인들은 아예 에베레스트 산을 특정 목표로 정했다. 한편 다른 나라의 등산가들은 히말라야의 다른 높은 봉우리들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소련 등반대는 1933년 지금은 코뮤니즘 봉이라 불리는 스탈린 봉(7,377m)을, 독일 등반대는 1936년 시니올추 산(6,780m)을, 영국 등반대는 같은 해 난다데비 산(7,693m)을 정복했다.

권위있는 등산잡지인 런던의 〈알파인 저널〉에는 1940~47년 사이에 처음으로 정복된 봉우리가 전혀 실려 있지 않은데, 이것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긴박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성공한 '첫 등반'은 1947년 르네 디테르를 대장으로 하는 프랑스 등반대의 사토판트 산(6,964m) 정복이었다.

20세기 중엽에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등산가들이 잇따라 개가를 올렸다.

프랑스 등반대는 1950년 6월 안나푸르나 제1봉(7,964m)에 처음으로 올랐으며,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반대는 1953년에 낭가파르바트 산(7,998m)을, 이탈리아 등반대는 1954년 K2봉(8,475m)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영국 등반대는 1955년 칸첸중가 봉(8,451m)에, 스위스 등반대는 1956년 로체 봉(8,382m)에 올랐다.

그러나 영국 등반대의 에베레스트 산(8,848m) 정복은 이 모든 성공을 뛰어넘는 쾌거였다.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의 양봉업자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족 등산안내인인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의 꼭대기인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우뚝 섰을 때야말로 절정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이전 30년 동안 에베레스트 산 등정을 시도한 등반대가 7개 팀이었으며, 답사만 하고 돌아간 등반대도 3개 팀이 있었는데, 존 헌트 대령이 이끄는 영국 등반대가 8번째로 마침내 등정에 성공한 것이었다.

1954년 7월 이탈리아 등반대원 두 사람이 K2봉을 정복했다.

오스트리아 등반대는 1954년 다울라기리 봉보다 약간 더 높은 초오유 봉(8,072m) 정상을 밟았다. 정상에 올라선 사람들 중에는 파상 다와 라마도 있었는데, 그는 해발 3,900m 높이에서 불과 3일만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세웠다.

1955년 5월 프랑스 등반대는 셰르파족 안내인 1명을 포함한 모든 등반대원과 함께 에베레스트 산 옆에 있는 마칼루 제1봉(8,330m)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찰스 에번스가 이끈 영국 등반대가 흔히 세계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봉우리의 하나로 손꼽히는 해발 8,451m의 칸첸중가 봉에 올랐다. 찰스 에번스는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데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등반대의 부(副)대장이었는데, 그의 등반대는 시킴 정부의 요청으로 거룩한 정상을 밟기 직전에 등반을 중단했다.

1960년대 등산은 몇 가지 변화를 겪었다.

알프스 등반의 황금기에 그랬듯이, 일단 봉우리를 정복하면 등산가들은 점점 더 어려운 코스를 찾는 데 역점을 두게 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보조장비들이 개발되고 등산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깎아지른 듯한 수직 벼랑이나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암벽도 등반하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서 있는 미끄러운 화강암 암벽을 정복하는 데 보통 며칠씩 걸렸으며, 심지어는 1번에 몇 주일씩 걸릴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70년 미국 등반대는 북아메리카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큰 바위덩어리인 엘카피탄 산의 남동쪽 벼랑에 도전하여, 90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무려 27일 만에 정복했다.

기술

등산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산하는 사람들의 모습

완벽한 등산가는 걷기·암벽등반·눈과 얼음을 정복하는 기술에서 모두 탁월해야 하지만 등산의 이 3가지 측면은 서로 전혀 다르다.

게다가 하나의 범주 안에서도 변화의 폭이 넓기 때문에 아무리 가장 노련한 등산가라 할지라도 모든 측면에서 똑같은 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훌륭한 등산가는 그 균형을 잘 유지하여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이나 접근방식과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이다.

걷기는 모든 등산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등산은 결국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옮겨가는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산을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의 진입로나 낮은 비탈의 샛길을 천천히 그리고 끈기있게 몇 시간이고 걸어 올라가는 것이 등산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코스이다. 울퉁불퉁하거나 미끄러운 오르막길 또는 내리막길을 오랫동안 걷는 것은 등산가들에게 훌륭한 훈련이 되며, 비탈길을 몇 시간씩 오르내릴 수 있는 능력은 등산가의 지구력을 가장 잘 나타내주기도 한다.

암벽등반은 걷기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하나의 스포츠이다.

암벽등반
암벽등반

암벽등반의 기본요소는 흔히 현장에 있는 벼랑에서 배우게 되는데, 그곳에서 동료들과의 공동작업과 로프 사용법, 암벽등반의 필수조건인 통제력과 리듬의 조절을 몸에 익히게 된다. 로프와 고정장치 및 스냅 고리라고도 하는 카라비너(고정장치에 끼워서 로프를 걸 수 있게 만든 금속고리)가 주로 안전을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텐션 클라이밍에서는 예외가 생기는데, 여기서 선두는 신중하게 배치된 고정장치와 로프를 건 카라비너로 몸을 지탱한다. 선두가 또 다른 고정장치를 박기 위해 천천히 위로 올라갈 때는 동료들이 로프에 매달린 선두를 받쳐준다. 선두는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여 암벽을 정복한다.

고정장치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아껴서 신중하게 사용한다.

고정장치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로프나 쇠줄에 부착되어 있는 조그만 성형(成形) 금속조각인 촉(쐐기)은 바위틈에 손으로 끼워서 고정시킨다. 쇠못인 피톤은 한쪽 끝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망치로 바위틈에 박아넣는다. 금속막대인 볼트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망치로 박아넣은 다음, 바위 밖으로 드러난 볼트의 끝부분에 고리를 건다. '프렌드'는 회전장치가 달린 촉의 일종으로 바위틈에 자동적으로 들어맞도록 되어 있다.

고정장치는 손잡이나 발판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암벽등반가들은 손과 발만 있으면 암벽을 오를 수 있다. 특히 발이 대부분의 역할을 한다. 등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암벽등반을 하려면 팔과 어깨가 굉장히 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튼튼한 팔과 어깨가 필요한 것은 '오버행'이라고 하는 경사가 60℃가 넘는 암벽을 통과할 때뿐이다.

대체로 손은 균형을 잡는 데 사용하고, 발은 몸을 지탱하는 데 사용한다. 등산가는 벼랑 위로 몸을 끌어올리는 데 손과 팔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균형은 등산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등산가는 체중을 되도록 직접 발에 싣고, 바위가 허용하는 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있어야 한다. 특히 곧추선 자세를 취하면 등산의 5번째 요소인 두 눈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벼랑을 올라가면서 신중하게 주위를 관찰하면, 애써 기어올랐다가 발판을 찾지 못해 다시 내려오는 헛수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가는 보통 몸의 3부분(두 손과 한 발, 또는 한 손과 두 발)이 바위에 달라붙어 있도록 해야 한다. 몸이 바위에서 떨어지면, 안전율도 0%로 떨어지기 때문에 붙잡을 곳을 잡기 위해 펄쩍 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등반시의 규칙적인 움직임은 경사의 난이도에 따라 느릴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리듬을 몸에 익히기는 어렵지만 일단 리듬을 익히면 꽤 훌륭한 등산가가 될 수 있다.

등반이 어려울수록 몸을 지탱하기 위해 두 손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손은 여러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원통 모양의 파이프 같은 침니에서는 두 손을 양쪽으로 뻗어서 양쪽을 누른다. 너럭바위에서는 미끄러운 바위를 손바닥으로 누르면 바위를 붙잡는 데 필요한 마찰이 생길 수 있다.

보통 가파른 암벽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위에서는 아래쪽에 있는 발판을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등산가들은 대개 손을 아래로 힘껏 뻗치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빨리 내려가는 방법은 '라펠'이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2중 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인데, 한쪽 끝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로프를 몸에 감고, 한 손으로 로프를 원하는 만큼 빠르게 또는 느리게 조절하면서 암벽을 따라 서서히 내려가면 된다.

로프를 다루는 것은 눈이나 얼음이나 암벽 위에서 똑같이 필수적인 기술이다.

암벽등반을 하려면 경사면을 오르고 라펠을 하기에 충분한 길이의 로프가 필요하다. 로프는 생명줄로서 잘 간수하고 신경을 써야 하며 로프를 잘 다루는 사람은 등반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로프를 다루는 기술은 배우기가 어렵고, 주로 경험을 통해 익혀야 한다. 등산가는 고정장치와 카라비너를 잘 배치하고 로프를 꿰어 최대의 안전을 보장할 뿐 아니라 오르내리는 데 필요한 노력을 최소화해야 한다. 로프가 꽉 끼어서 움직이지 않게 될 우려가 있는 바위틈과 로프가 걸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있는 노두(露頭)나 관목을 피하는 것도 로프를 다루는 기술에 포함된다. 표면이 거칠거나 모서리가 날카로운 바위에 로프를 걸치면 안 된다. 이런 곳에 로프를 걸고 잡아당기면, 마찰 때문에 로프가 손상되거나 바위조각이 떨어져 나가면서 로프를 끊어버릴 우려가 있다. 등산할 때 헬멧을 쓰면 불편하기도 하고 시야나 기동성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주로 헬멧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눈과 얼음의 상태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등산가들이 부딪치는 중요한 위험요소가 된다.

훌륭한 등산가라면 눈의 상태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깊이 갈라진 틈)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눈사태의 조짐을 미리 알아차려야 하며, 그밖에도 방심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눈밭이나 얼음밭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 눈과 얼음 속에서는 높은 산을 오르는 데 필요한 보조기구로서 얼음을 깨는 피켈을 사용하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손잡이 한쪽 끝에 곡괭이와 손도끼가 마주 달려 있고 반대쪽 끝에는 대못이 달려 있는 이 피켈은 얼음을 깎아서 계단을 만들고, 크레바스의 유무를 조사하고, 가파른 비탈을 올라가고, 필수적인 몸의 균형을 잡고, 로프를 고정시키는 등 다양하게 쓰인다. 아이젠(장화 밑창에 고정시킬 수 있는 스파이크 창)은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비로서 눈과 얼음으로 덮인 가파른 비탈과 피켈로 깎은 계단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아이젠은 눈이나 얼음에 박히기 때문에 장화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을 갈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밑창에 아이젠을 달면 굳이 계단을 만들지 않아도 대부분의 비탈을 올라갈 수 있다. 지독히 험난한 눈과 얼음에서는 아이스피톤과 카라비너를 사용하는데, 피톤은 눈이나 얼음에 박히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젠
아이젠

눈 덮인 긴 비탈을 올라가는 지루한 등반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천천히 리듬에 맞춰 걷는 것이 필요하다.

눈이 단단히 얼어붙은 새벽에 등산을 시작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등산의 모든 단계에서처럼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올라갈 때는 상황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등산 거리, 날씨의 상태, 태양열이 눈과 얼음에 미치는 영향, 눈사태의 위험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 스포츠의 기본조직체는 등산 클럽이나 암벽등반 클럽이다.

등산가가 있는 나라에는 모두 등산 클럽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1857년에 창설된 영국의 '알프스산악회'가 아마 가장 유서깊은 단체일 것이다. 등산 클럽은 알프스 산맥 주변국가들과 영국 및 북아메리카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규모가 큰 등산 클럽에서는 주요 등반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클럽에서 연례보고서나 정기보고서를 발표하고 잡지나 기관지를 발간한다.

적성

등산
등산

등산활동은 그 자체로 격렬한 운동이기 때문에 여기에 혹독한 기상조건과 생활조건이 가미되면 인체는 심한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등산 대상이 되는 산이 높은 산일수록 그 영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저지 등산(3,000~5,000m)의 경우에는 날씨가 좋으면 신체에 주는 영향은 적지만 격렬한 운동이 될 수 있으므로 평소 생활에는 무리가 없더라도 심장질환이나 고혈압 등이 있는 사람은 본격적인 등산은 피하는 것이 좋다.

등산 특유의 병으로는 고산병이 있는데 3,000m 수준의 산에서도 걸릴 수가 있다. 비만형의 젊은 여성이나 고령자는 이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숙련된 등산가가 고산병의 증상을 보이는 것은 약 3,700m 이상이라고 하는데 3,000m 수준에서 일반 등산자가 걸리는 고산병은 등산에 따른 과로가 큰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지 등산에서 특히 신경써야 할 사항은 기온의 변화이다. 산에 바람이나 비가 몰아치거나, 땀을 많이 흘린 후에 차가운 바람을 맞게 되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감기에 걸리게 되고 때에 따라서는 폐렴에 걸리게 된다. 겨울에 등산을 하게 되면 동상이나 동사의 위험도 많다. 저온에 의한 발병을 막아내는 데에는 방한복에 의한 보온이 제일이다.

고지 등산의 경우 5,500m의 높은 곳에 이르면 대기압은 평지의 약 절반이 되고 산소분압은 평지의 150㎜Hg에서 80㎜Hg으로 감소하게 된다. 만약 보통 사람이 5,500m의 고소조건에 노출된다면 혈액의 산소 포화도는 70%이하로 떨어져 심한 고산증세를 나타내게 된다. 고산병은 일정 높이에 올라가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으나 보통 그러한 고도에 며칠동안 머무르게 되면 산소부족에 적응하는 인체의 고도순응이 일어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같은 순응이 일어나는데는 열흘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고도 순응에도 한계가 있어서 5,200m에 장기체재하게 되면 인체의 기능이 약화되는데 이것을 고소쇠퇴라고 한다. 6,500m이상에서는 산소흡입을 하지 않으면 장기간의 체류가 불가능하다. 고지 등산에서는 산소부족과 저온 등이 원인이 되어 손가락끝이나 얼굴에 동상을 일으키기 쉽다. 또 호흡 수가 증가하여 체내 수분이 자기도 모르게 증발하는 경우가 많고, 보급부족으로 수분섭취가 줄어들기 때문에 탈수증에 걸리기도 쉽다.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등반대 이래 고소등산자는 하루 최소 3리터의 수분을 보급받아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탈수와 적혈구 증가에다 사지의 외상 등으로 인해 혈전성 정맥염이 발생하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지에서 사는 주민들은 평지에 왔다가 다시 원래의 고지로 돌아가면 폐수종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경험이 히말라야 등산대에도 알려져 있어 고소폐수종이라 불린다.

등산장비

등산은 주로 걸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장비와 식량을 휴대하는 데에는 한도가 있다. 우선 안전하고, 견고하고, 가볍고, 그리고 취급하기 쉬운 것이 장비의 필수조건이다.

복장은 평지에서 입는 것보다는 신체보호, 보온, 방수, 방풍의 기능을 갖추어 행동하기에 편리한 것이어야 한다. 방한구와 우비 등은 땀을 금방 말릴 수 있는 것이 좋다. 방한용에는 모직물이 좋으며 스웨터는 가슴이 쫙 펴지는 것이 좋다.

등산의 필수장비로는 구두와 배낭을 들 수 있다. 그 이외의 장비는 대상이 되는 산, 등산기간, 계절, 등산인원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구두는 눈이 없는 곳을 가볍게 오를 때는 캐러반 슈즈도 별 문제가 없으나 그 외의 경우에는 가죽으로 된 창이 두꺼운 등산화가 좋다. 암벽 등반 시에는 크레타 슈즈를 사용하기도 한다. 겨울철에는 오버슈즈를 신어야 한다. 배낭은 등산기간과 필요한 짐의 양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며 대체로 큰 것(바닥의 길이가 48~60㎝가 되는 것)을 준비한다.

등산화와 배낭
등산화와 배낭

암벽등반에는 자일, 하켄, 카라비나, 해머, 안전벨트 등이 필요하고 빙벽 등반에는 피켈, 아이젠 등이 사용된다. 또 눈위에서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끈, 표시 천, 스키, 둥근 설피 등이 필요하다. 빙하의 경우에는 스노우 라케트라고 불리는 커다란 설피가 유용하다. 야영의 경우에는 텐트가 공동장비이며 침낭, 매트리스, 텐트슈즈 등이 개인장비이다. 석유 스토브, 랜턴(등), 연료, 취사용구, 손도끼, 톱,망원경 등 소도구가 필요하다. 일반 휴대품으로는 물통, 세면도구, 지도, 나침반, 시계, 등, 구급약품, 비상식 등이다.

암벽등반 장비
암벽등반 장비

등산식량

등산은 노동량이 대단히 많은 운동이기 때문에 체중 50㎏의 사람이 평지에서 2,500칼로리가 필요하다면 여름 산에서는 4,000칼로리, 겨울산에서는 5,000칼로리가 필요하다. 등산 식량으로는 소화흡수가 잘 되는 것, 가볍고 잘 썩지 않는 것, 영양가가 높은 것이 적당하다.

그러나 산에서는 노동이 급격히 많아져 식욕이 감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비하여 체력을 쌓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등산에 나서기 1주일 전부터 충분한 영양식을 섭취해둘 필요가 있다.

또 등산에는 반드시 비상식량 혹은 예비식량을 휴대해야 한다. 3일 정도의 등산계획이라면 1일분의 예비식량을 지참해야 되며 야간 등산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하여 비상식량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산에서 움직일 때에는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하루 중의 식사도 3~4회씩 나누어 여러번에 걸쳐 먹는 것이 체력의 조정에 편리하다.

등산에서의 조난

산이라는 대자연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위험이 수반되는 곳이기도 하다. 조난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조난사고는 대부분 무지와 무모함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서 불가항력에 의한 것은 손으로 헤아릴 정도로 적다.

조난의 3대 요인은 암벽추락, 눈사태, 피로인데 희생자는 대부분 20대를 전후한 청년층이 많다. 자기의 능력을 과신한다거나, 등산대의 실력을 과대평가하여 무리한 등산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로 한 산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여 장비를 불완전하게 갖춘 채로 등산에 임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날씨의 갑작스런 변화와 길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심적 동요는 조난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등산대장은 먼저 등산대원을 완전히 장악하여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길을 잃었을 때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지 않은 채 추측에 의한 행동을 하는 것은 심신소모의 큰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조난에 들어서는 길이 된다. 짙은 안개나 눈발로 앞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는 그 장소에서 그대로 대기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방책을 생각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링 원더링(직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동일지점을 원모양으로 배회하는 것)등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마음이 초조하기 때문이다. 산에서 피로하면 반드시 초조감이 따르게 되는데 극도로 초조하게 되면 비정상적인 심리상태가 될 수도 있다. 날씨가 나쁜 상황에서 피곤하면 조난에 빠지는 첩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동절기의 조난은 눈사태와 눈보라가 압도적이며 여름 등산의 조난은 겨우내 눈이 덮여 있던 미끄러운 계곡이나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 일어난다. 등산대원 중에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장은 대원들의 정신상태가 동요하지 않도록 단속하고 흐트러짐 없는 지휘를 해야 한다. 만약 대원이 미끄러운 계곡이나 바위에서 굴러 떨어진 사고가 발생하면 다른 대원들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킨 후 굴러 떨어진 곳까지 내려가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눈사태
눈사태

조난장소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기, 피리를 불기, 물건을 두드려 소리를 내기 등의 음향전달 방법, 하얀 천을 흔드는 시각적 전달 방법, 야간에는 횃불을 쳐드는 방법 등이 있다. 세계 공통의 횃불 신호는 1분간에 10초 간격으로 6회 흔들고 1분간 중지했다가 다시 10초 간격으로 6회 흔든다. 이것을 몇번이고 반복한다. 응답신호는 1분간에 20초 간격으로 3회 흔들고 1분간 쉬었다가 또 반복하는 것이다. 눈보라로 횃불신호가 어려울 때는 지형을 잘 살핀 후 눈동굴을 만들어 대기해야 한다. 조난자가 이미 절명했을 때는 시체의 이동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런 불행한 사태는 등산의 본질을 무시하고 산행에 나선 것이 그 원인이므로, 조난을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한국의 등산 역사

순수한 등산의 효시는 화랑도에서 시작되나 어떤 산을 어떤 방식으로 등산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는 민간 신앙의 대상이 산이었기 때문에 등산을 많이 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는 승려와 일반 신도들의 신앙생활과 관련된 수도의 목적으로 산행에 나섰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백두산의 정계비, 북한산의 수렵비, 신라시대의 황초령, 마운령 비 등을 살펴볼 때 군사적인 목적의 등산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한국에서 근대적인 등산이 행해진 시기는 대체로 보아 1920년대라고 할 수 있다. 1926년 영국인 아처(Archur)와 임무(林茂)가 북한산 인수봉을 첫 암벽등반한 것이 근대등산의 시작이다. 이와같이 서울 근교의 암벽을 등반하면서 확대되기 시작한 알피니즘은 1930년대부터 금강산, 백두산 등지로 그 대상지역이 확대되어 나갔다. 그러나 1940년대와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와 6·25 전쟁 통에 산악운동이 활발하지 못했다.

1960년대에 들어와 각종 등산 단체를 통합한 대한산악 연맹이 창설되면서(1962) 산악활동이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다. 특히 1962년에는 경희대학교의 등산대가 다울라기 Ⅱ봉을 시등하여 해외원정의 깃발을 처음으로 높이 쳐들었다. 이어 1970년에는 추렌히말 원정, 1971년에 제1차 마나슬루 원정과 로체살 원정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77년 18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대한 산악 연맹 소속의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김영도)의 고상돈(高相敦)과 셀파 펨파노루부는 9월 15일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해외원정은 꾸준히 늘어나 1980~85년 사이에 68개에 달하는 해외원정대가 히말라야 지역을 원정했다. 1983년에는 윤대표(尹大杓)외 6명이 바인터브락 Ⅱ봉의 세계 초등정을 이룩했고, 또한 허영호는 마나슬루를 무산소 단독초등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1984년에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한국원정대가 히말라야로 몰려 산악운동의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1987~88년에는 허영호가 에베레스트 동계등정에 성공했다.

허영호(許永浩)
허영호(許永浩)

대상

한국에서 등산의 대상이 되는 산으로는 백두산(2,744m), 개마고원, 묘향산, 낭림산, 금강산 등과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등이 꼽힌다. 암벽등산의 대상으로는 서울 근교의 북한산과 도봉산을 들 수 있다. 동계 등산으로는 다양한 기상조건을 갖춘 한라산과 덕유산, 소백산,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등을 친다. 최남선은 북한산,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장안산, 지리산을 조선 8도의 12명산으로 쳤다. 여기에 묘향산, 한라산, 구월산, 칠보산, 설악산, 관모봉, 소백산, 주왕산을 넣어 20대 명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