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 이성질체

결합 이성질체

[ linkage isomer ]

배위 결합을 하는 착화합물에서 하나의 리간드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중심 금속에 결합할 수 있으면 결합 이성질체(linkage isomer)가 생기는데, 이들은 구조 이성질체이므로 화학적 조성은 같지만 물성은 다르다. 예를 들어, 싸이오싸이아네이트(thiocyanate; SCN-)와 같은 양쪽 자리성 리간드(ambidentate ligand)는 황 원자, 혹은 반대쪽의 질소 원자를 통해 금속에 배위할 수 있다. 나이트라이트(nitrite; NO2-)의 경우에는 양쪽 끝의 산소 혹은 가운데 질소 원자가 금속과 결합에 참여할 수 있다. 다이메틸설폭사이드(dimethyl sulfoxide; CH3S(=O)CH3)는 설폰 작용기를 구성하는 황이나 산소를 주개 원자로 이용할 수 있으며1), 이러한 양쪽 자리성 이성질 현상이 결합 이성질체의 대표적 사례이다.

결합 이성질체를 만들 수 있는 양쪽 자리성 리간드와 루이스 구조식 (출처:대한화학회)

목차

싸이오싸이아네이트 착화합물

싸이오싸이아네이트는 선형 구조를 갖는 음이온으로써 금속 이온의 종류에 따라 선호하는 결합 부위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단단한 금속에는 질소 원자 쪽이 그리고 무른 금속에는 황 원자 쪽이 배위하며2), 이는 단단하고 무른 산 염기 이론(Hard Soft Acids and Bases)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착화합물에 이름을 붙일 때는 양쪽 자리성 리간드의 어떤 주개 원자가 금속에 결합하느냐를 구별해 주는 규칙이 필요하다. 황이 주개 원자로 참여하는 SCN- 이온은 싸이오싸이아네이트(thiocyanate)로 부르는데, thiocyanato-κS라고 써서 주개 원자를 더욱 명확히 해주기도 한다. 반면, 질소가 주개 원자가 될 때에는 아이소싸이오싸이아네이트(isothiocyanate)라고 부르며, thiocyanato-κN라고 쓴다. 여기서 그리스 문자 κ는 여러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리간드에서 주개 역할을 하는 원자를 특정할 때 쓰는 기호이다.

양쪽 자리성 SCN- 리간드가 무른 산으로 작용하는 수은(II)과 강한 산으로 작용하는 구리(II)를 연결하는 다리 리간드(bridging ligand;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금속에 동시에 배위하여, 다수의 금속을 잇는 리간드)의 역할을 하는 이종이핵 착화합물(heterodinuclear complex). CCDC# RATBOF의 원자 좌표를 이용하여 공과 막대기 모형으로 표현했다 (출처:대한화학회).

주개 원자의 비공유 전자쌍 개수가 다르기 때문에 결합 이성질체는 구조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M—N 결합을 갖는 이성질체는 M—N—C 결합각이 180도에 가까운 선형 결합을 하지만 M—S 결합을 하는 이성질체는 M—S—C 결합각이 굽은 형태가 된다(위 그림 참조). 금속-리간드 주개 원자의 결합을 축으로 리간드가 회전할 경우, M—S 결합을 하는 결합 이성질체가 고깔 모양의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고, 그 결과 입체 장애가 커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금속 이온에 대해서 M—N 결합을 갖는 구조와 M—S 결합을 하는 구조가 모두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화학식이 [Co(NH3)5(SCN)]2+코발트(II) 6-배위 착화합물은 SCN- 리간드가 황 쪽으로 배위하는 자주색의 [(NH3)5Co(SCN)]2+ 이성질체와 질소 쪽으로 배위하는 오렌지색의 [(NH3)5Co(NCS)]2+ 이성질체로 얻을 수 있다.3)

[Co(NH3)5(SCN)]2+의 두 가지 결합 이성질체의 화학 구조(나머지 배위 자리를 이루는 암모니아 리간드는 생략)와 X-선 결정 구조 (CCDC: MEPMUA). 이와 관련해서, 싸이오싸이아네이트 이온이 다리 리간드로 작용하여 두 개의 코발트(III) 금속 중심을 연결하는 이핵 착화합물의 구조를 오른쪽에 보였다 (CCDC: MUSYOQ) (출처:대한화학회).

심지어, 하나의 금속에 두 개의 SCN 리간드가 결합했을 때, M—N 결합 형태와 M—S 결합 형태가 한 분자 안에서 관찰되는 경우도 있다.4)5) 선형의 M—N—C 결합각과 굽은 M—S—C 결합각은 확연히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다.

양쪽 자리성 SCN- 리간드가 thiocyanato-κS와 thiocyanato-κN의 두가지 형태로 팔라듐(II)에 배위하는 금속 착화합물의 화학구조(왼쪽)과 X-선 결정학으로 확인한 3차원 구조(오른쪽; CCDC# SAYHIJ의 원자 좌표를 이용하여 공과 막대기 모형으로 표현했다) (출처:대한화학회)

용매에 따라 선호되는 결합 이성질체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팔라듐(II)에 싸이오싸이아네이트가 결합한 [Pd(AsPh3)2(NCS)2] 착화합물이 고체상에서는 Pd—N 결합을 하는 4-배위 사각 평면(square planar) 구조로 존재한다. 하지만, 아세톤이나 아세토나이트릴과 같이 높은 쌍극자 모멘트를 갖는 용매에 녹이면 Pd—S 결합을 갖는 이성질체로 변한다. 반면, 벤젠이나 사염화탄소와 같이 낮은 쌍극자모멘트를 갖는 용매에서는 Pd—N 결합을 갖는 구조가 더 안정하다.6)

용매의 극성 변화에 따른 팔라듐(II) 금속 착화합물의 결합 이성질화 현상 (출처:대한화학회)

나이트라이트 착화합물

나이트라이트는 질소 중심원자의 양쪽에 산소가 연결된 굽은 구조의 리간드로서, M—N 결합 또는 M—O 결합을 갖는 두 가지 결합 이성질체를 만든다. 질소 쪽이 배위하면 나이트로(nitro), 산소 쪽이 배위하면 나이트리토(nitrito)라고 각각 부른다. 주개 원자를 보다 명확히 표시하기 위해 nitrito-κN와 nitrito-κO로 각각 쓴다.

결합이성질 현상이 배위 화학에서 최초로 알려진 사례가 나이트라이트 착화합물이다.  [Co(NH3)5(NO2)]Cl2의 동일한 화학식을 가지는 배위화합물이 빨간색과 노란색의 물질로 각각 존재한다는 사실은 1800년대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다. 배위 화합물 결합 모델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베르너(A. Werner)와 외르겐센(S. M. Jørgensen)이 가능한 금속-리간드 조합에서 얻을 수 있는 이성질체의 개수를 이용하여 각자의 논리를 뒷받침하고자 했던 일련의 경쟁적 실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침내 1907년에 이 두 이성질체의 구조적인 차이를 베르너가 설명했다.7)

[Co(NH3)5(NO2)]2+의 두 가지 결합 이성질체의 화학구조 (나머지 배위 자리를 이루는 암모니아 리간드는 생략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의 코발트(III) 중심에 두 개의 나이트라이트 리간드가 각각 nitrito-κN와 nitrito-κO의 결합 형태로 배위한 착화합물의 구조를 오른쪽에 보였다 (CCDC: YIBPEF) (출처:대한화학회).

[Co(NH3)5(NO2)]Cl2의 빨간색 이성질체는 Co—ONO 결합을, 노란색 이성질체는 Co—NO2 결합을 한다. 열역학적으로는 Co—NO2 결합이 Co—ONO 결합보다 강하기에, 빨간색 이성질체는 상온의 결정이나 용액 상태에서 노란색 이성질체로 서서히 변한다. 흥미롭게도, 노란색 이성질체의 단결정에 텅스텐램프의 빛을 쪼이면 빨간색 이성질체로 변하는 역반응이 일어난다.8)

다이메틸설폭사이드 착화합물

음이온뿐 아니라 중성 리간드도 결합 이성질체를 만들 수 있다. 삼각뿔(trigonal pyramid) 모양의 분자로서, 황 원자나 산소 원자를 전자쌍 주개로 이용하여 금속에 배위하는 다이메틸설폭사이드(DMSO)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예를 들어, 6-배위 루테늄(II) 착화합물인 [Ru(DMSO)4Cl2]는 금속을 중심으로 두 개의 염소 리간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트랜스-이성질체, 혹은 서로 인접해 있는 시스-이성질체로 존재한다. 트랜스-이성질체의 DMSO 리간드는 모두 황을 주개 원자로 해서 금속에 배위한다. 하지만, 시스-이성질체의 경우, 세 개의 DMSO 리간드는 Ru—S 결합을, 나머지 하나는 Ru—O 결합을 하는 결합 이성질 현상을 보인다. 열역학적으로 더 안정한 시스-이성질체에 자외선을 쬐면 트랜스-이성질체로 바뀐다.9)10)

[Ru(DMSO)4Cl2] 두 가지 이성질체의 X-선 결정 구조 (KACNOR; CDMSOR). 중심 금속에 배위된 염소 리간드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트랜스(왼쪽)와 시스(오른쪽)의 입체 이성질체로 구별할 수 있다. 시스-이성질체에서 Ru—O 결합을 하고 있는 DMSO 리간드를 동그라미로 강조했다 (출처:대한화학회).

합토(hapto) 배위화합물

리간드의 분자 골격에서 나란히 연결된 다수의 원자가 금속에 동시에 배위한 착화합물을 합토 배위화합물(hapto-coordinated complex)이라고 부른다. 인접한 탄소 원자 사이에 단일 결합과 이중 결합이 반복되는 방향족 고리 화합물이 리간드로 작용할 때 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유기금속 화합물인 페로센(Ferrocene)의 경우, 사이클로펜타디에닐 리간드의 다섯 개 탄소 원자 모두가 전자 주개로 참여하여 철에 배위한다. 이 숫자를 표시해 주기 위해, 다섯 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펜타(penta)를 앞에 붙여 펜타합토(pentahapto)라고 쓰고, 기호로는 "η5"로 표시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합토 배위화합물에서도 결합이성질 현상이 일어난다. 아래 그림에서 6-배위 오스뮴(II) 착화합물은 두 개의 부분입체 이성질체(diastereomer)로 존재할 수 있는데, 금속에 η2-형태로 배위된 벤젠 고리와 락테이트 작용기 사이의 입체 장애가 더 작은 이성질체가 구조적으로 더 선호된다.11) 이 두 이성질체는 벤젠 리간드가 금속 중심에 결합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결합 이성질체로 간주할 수 있으며, 금속이 고리 위를 걷듯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통해 상호 변환한다. 대표적인 방향족 탄화수소인 벤젠뿐 아니라, 나프탈렌과 같이 여러 개의 고리로 이루어진 파이-콘쥬게이션 리간드를 갖는 금속 착화합물에서도 결합 이성질 현상을 볼 수 있다.

오스뮴(II)에 @@NAMATH_INLINE@@ \eta^2 @@NAMATH_INLINE@@-형태로 배위된 아렌 리간드의 결합 이성질 현상. 단순화시킨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아렌에 치환된 작용기(R*)가 키랄성을 갖기 때문에 두 이성질체는 거울상이 아닌 부분입체 이성질체이다 (출처:대한화학회).

참고 자료

1. Miessler, G. L.; Fischer, P. J.; Tarr, D. A. Inorganic Chemistry, 5th Ed; Pearson, 2013.
2. Gispert, J. R. Coordination Chemistry, Wiley, 2008
3. 'Mechanism of base hydrolysis for CoIII(NH3)5X2+ ions. Hydrolysis and rearrangement for the sulfur-bonded Co(NH3)5SCN2+ ion', David A. Buckingham, I. I. Creaser, and A. M. Sargeson. Inorg. Chem., 1970, 9, pp 655–661. [DOI: 10.1021/ic50085a044]
4. 'Mixed thiocyanate bonding in palladium(II) complexes of bidentate ligands', Devon W. Meek, Philip E. Nicpon, and Violet I. Meek. J. Am. Chem. Soc., 1970, 92 (18), pp 5351–5359.  [DOI: 10.1021/ja00721a011]
5. "The conjunctive response to steric hindrance in dithiocyanato[bis(diphenylphosphino)alkyl or aryl]palladium(II) complexes: a new look at a classic series", Anthony J. Paviglianiti, David J. Minn, William C. Fultz, and John L. Burmeister. Inorg. Chim. Acta. 1989, 159(1), 65-82. [DOI: 10.1016/S0020-1693(00)80897-X]
6. 'Solvent-induced linkage isomerizations', John L. Burmeister, Robert L. Hassel, and Robert J. Phelan. Inorg. Chem., 1971, 10 (9), pp 2032–2038. [DOI: 10.1021/ic50103a039]
7. 'Über strukturisomere Salze der Rhodanwasserstoffsäure und der salpetrigen Säure', Alfred Werner. Chem. Ber. 1907, 40 (Jan-Feb), pp 765-788. [DOI: 10.1002/cber.190704001117]
8. 'Nitrito-nitro linkage isomerization in the solid state. 2. A comparative study of the structures of nitrito- and nitropentaaminecobalt(III) dichloride', Ingmar Grenthe and Ellika Nordin, Inorg. Chem., 1979, 18 (7), pp 1869–1874.  [DOI: 10.1021/ic50197a031]
9. 'Synthesis and Reactivity of Ru-, Os-, Rh-, and Ir-Halide−Sulfoxide Complexes', Enzo Alessio, Chem. Rev., 2004, 104 (9), pp 4203–4242.  [DOI: 10.1021/cr0307291]
10.
11. 'Conformational and linkage isomerizations for dihapto-coordinated arenes and aromatic heterocycles: controlling the stereochemistry of ligand transformations', W. Dean Harman, Coord. Chem. Rev., 2004, 248 (9-10), pp 853-866.  [DOI: 10.1016/j.ccr.2004.0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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