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

각인

[ Imprinting ]

각인(Imprinting)은 부모 중 누구로부터 대립유전자를 전달받았는지에 따라 유전자 발현 여부가 결정되는 현상을 말한다. 포유류는 이배체(diploid) 생물이어서 부모로부터 상동인 염색체 한 세트씩을 전달받아 2세트의 상동염색체를 보유한다. 따라서 포유류는 거의 대부분의 유전자마다 2개 복사본(대립유전자)을 가진다. 정상적으로는 각 유전자의 부계 복사본과 모계 복사본 모두 동일한 전사발현 능력을 가진다. 각인은 이런 잠재력에 변화를 유도하는 후성유전학적 기작으로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은 2개 부모 염색체 중 어느 하나에서만 기능하도록 제한하는 특성을 보인다. 즉, 각인유전자에 속하는 모계와 부계의 대립유전자 중 하나만 전사발현이 되므로 단일대립유전자 발현(monoallelic expression)의 특징을 보인다.

목차

각인유전자이 존재 이유

우리 인간 유전체에 포함된 약 2만 5천개 유전자 중 단지 수백 개 정도가 각인유전자 일 것으로 추정된다. 각인 형상은 포유류에서 주로 발견되는 특성이 있다. 알을 낳아 생식하면서 처녀생식이 가능한 파충류나 양서류에서는 각인 현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즉, 각인 현상이 포유류에서 활용되는 이유는 처녀생식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컷의 정자에서 제공되고 전사발현이 가능한 각인 유전자 중에는 초기 배발생에 필수적인 유전자가 많다. 암컷의 난자는 정자에 의한 수정 없이도 혼자서 배발생을 진행하는 처녀생식이 가능하다. 하지만 각인 유전자처럼 정자에서 제공되는 복사본만이 전사발현이 되어 배발생을 가능케 한다면 미수정 난자에서의 처녀생식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 잘 연구된 각인 유전자 종류와 기능이 표1에 나와 있다.

표1.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각인 유전자들
유전자 발현되는 대립유전자 기능
WT1 모계 윌름스 종양억제유전자, 세포성장 억제
INS 부계 인슐린; 세포성장과 물질대사에 연관된 호르몬
Igf-2 부계 인슐린 유사 성장인자 II, 인슐린과 기능 유사함
Igf-2R 모계 Igf-2에 대한 수용체
UBE3A 모계 유비퀴틴 매개성 단백질분해과정 조절, Angelman 신드롬 원인유전자
SNRPN 부계 스플라이싱 인자, Prader-Willis 신드롬 원인유전자
Gabrb 모계 신경전도물질 수용체

각인의 분자 기작

각인 현상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인슐린과 유사한 성장인자를 암호화하는 Igf-2 유전자이다, Igf-2는 모계 염색체에서 발현이 억제되며, 반면 부계 염색체의 복사본은 정상적으로 발현된다.

생쥐 모델에서 야생형 Igf-2와 기능상실 돌연변이인 Igf-2m으로 구성된 이형체(heterozygote)인 개체의 표현형 분석은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낳게 된다. Igf-2/Igf-2m의 동일한 유전자형을 가진 개체 중에는 서로 다른 표현형인 정상 크기 또는 난장이 형질을 보일 수 있다(그림 1). Igf-2/Igf-2m인 이형체에서 적어도 한 개의 야생형 대립유전자가 정상적으로 전사 발현이 되면 정상 크기의 개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Igf-2 복사본이 만약 부계 염색체가 아닌 모계 염색체에서 제공된다면 유전자의 염기서열 관점에서는 야생형이지만 각인에 의해 전사 발현이 억제되므로 정상 기능의 Igf-2 단백질 합성되지 않아 크기가 작은 난장이 쥐가 태어날 수 있다(그림 2). 결국 이형체인 개체에서 난장이 형질의 발현 여부는 돌연변이 대립유전자가 부모 중 누구로부터 전달되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림 1. 각인현상으로 인한 난장이 쥐. (출처:Gettyimages)

그림 2. 생쥐에서 게놈 각인의 예

세포 수준에서 각인현상은 3단계로 진행되는 후성유전학적 과정이다. (1) 각인은 해당 유전자의 운명에 따라 생식세포 형성과정 동안 세포 구축된다. (2) 각인이 완성된 유전자가 포함된 염색체는 생식세포(정자나 난자)를 통해 수정 과정, 배발생 과정, 그리고 성체의 체세포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3) 부모의 생식세포를 통해 전달된 각인은 자손세대의 생식세포에서 제거된 후 각인유전자의 운명에 따라 생식세포 형성과정 동안 재구축된다. 따라서 게놈 각인(genomic imprinting)은 적어도 동물의 체세포에서 변경되지 않고 원래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하지만 각인 유전자의 복사본에 대한 각인 표식(marking)은 세대별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대표적인 각인 유전자인 Igf-2의 각인 과정을 다시 정리해 보자. 여기서는 야생형 Igf-2와 돌연변이 Igf-2m으로 구성된 이형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가정한다. Igf-2 유전자의 각인은 수컷에서 정자 형성 과정 동안만 일어난다(그림 3). 따라서 정자 속의 야생형 Igf-2는 각인이 되지만 암컷의 생식세포인 난자에서는 Igf-2m은 각인되지 않는다. 이런 각인으로 부계 Igf-2 유전자만 발현된다. 수정 후 각인 현상은 발달 과정 동안 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예를 들어 수정란에서 형성된 성체의 체세포에서는 성별과 무관하게 모계 Igf-2m 대립유전자는 발현되지 않을 것이다. 자손개체의 생식세포에서 난자나 정자 형성과정 동안 각인은 모두 제거된다. 각인의 재구축은 해당 개체의 성별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수컷에서는 Igf-2와 Igf-2m 모두 각인 표식이 되는 반면, 암컷 생식세포에서는 각인 표식의 재구축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그림 3).

그림 3. Igf-2 유전자의 각인에 대한 모식도

게놈 각인은 표식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데, 각인유전자 근처에 각인조절부위(ICR, Imprinting Control Region)가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ICR에 포함된 DNA 영역은 다수의 CpG를 포함하며, 차별화된 DNA 메틸화 양상을 보여준다. 이런 부위를 DMR (Differentially Methylated Region)이라고도 부르며, 정자나 난자 중 어느 하나에서만 메틸화의 표식과정이 진행된다. 그렇다면 ICR 또는 DMR 부위에서의 DNA 메틸화는 어떤 역할을 할까? 일반적으로 DNA 메틸화는 전사억제인자의 결합을 촉진하지만 전사활성인자의 결합은 방해하는 특성을 보이므로 전사억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판단된다. 또한 ICR에는 각인유전자의 전사조절에 관여하는 적어도 1개 이상의 전사인자 결합부위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이유 때문에 각인은 보통 전사억제를 통해 유전자 발현을 침묵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각인과 인간 유전질환

앞서 언급한대로 각인은 2개 대립유전자 중 어느 하나만 발현이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현상이다. 만약 전사발현이 가능한 염색체 위의 각인유전자가 기능상실 돌연변이를 포함한다면 해당 유전자에서 정상기능의 단백질이 전혀 생성되지 않아서 기능결핍의 돌연변이 형질을 나타낼 수 있으며, 따라서 질병과 연관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각인유전자인 UBE3A와 SNRPN의 경우 프래드-윌리스(Prader-Willis) 증후군(PWS)과 엔젤만(Angelman) 증후군(AS)과 같은 인간 유전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표 1). PWS의 증상은 운동기능 장애, 비만, 지능감소 등을 보이며, AS는 갑작스런 발작, 운동기능 장애, 정신장애, 과잉행동장애의 특징을 보인다. 흥미롭게도 PWS와 AS의 원인유전자는 인간 염색체 15번에 이웃해 있으며, 이 유전질환은 PWS와 AS가 포함된 염색체 부위의 소실로 인해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PWS는 부계 복사본(paternal copy)이 발현되지만 AS 원인유전자는 모계 복사본(maternal copy)만이 전사 발현된다.

따라서 이 두 각인유전자가 함께 소실된 15번 염색체를 부모 중 누구로부터 전달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유전질환이 발병하게 된다. 즉, PWS와 AS 원인유전자가 결실된 15번 염색체를 모계로부터 유전되면(즉, 난자의 염색체에 포함되면) 자손개체는 발현될 AS 원인유전자가 결실로 인해 발현되지 않아 결국 AS 질환을 앓게 된다. 반대로 이 염색체를 부계인 정자로부터 제공받으면 자손개체는 발현 가능한 PWS 원인유전자 복사본이 결실로 발현되지 않아 PWS 질환을 앓게 될 것이다.

관련용어

각인(imprinting), DNA 메틸화(DNA methylation), 단일대립유전자 발현(monoallelic expression)

참고문헌

  1. Genetics (R. Brooker 저, 5판(2015), McGraw-Hill)
  2. Epigenetics (D. Allis외 2인 저, 2판(2015), Cold Spring Harbor Press)
  3. Introduction to Genetic Principles (David Hyde 저, 1판(2009), McGraw-Hill)
  4. 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