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무덤

조선향토대백과 인문지리정보관 : 문화 · 예술

장군무덤

[ 將軍- ]

분류 인문지리정보관>문화 · 예술>고적 · 사적 · 광장>고적
행정구역 평안남도>평성시>고천리

평안남도 평성시 고천리 서남쪽 군문터 옆에 있는 옛 무덤. 거란의 3차침입과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는 싸움을 지휘한 최춘명 장군의 무덤이라고 한다.

1231년 8월 몽골의 살례탑이 이끄는 10만의 대군은 구주성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았으나 다시 역량을 수습해 가지고 고려정복의 야망을 기어이 성사시켜 보려고 자모산성으로 달려들었다. 성을 겹겹이 포위한 살례탑은 성 안에 투항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그러나 최춘명 장군의 지휘 밑에 군사들과 백성들은 성을 끝까지 지켜 굴함 없이 싸웠다. 장기간에 걸치는 어려운 싸움 속에서 몇몇 장수들이 더 견디지 못하고 투항해 나섰으나 최춘명 장군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항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성은 일시 침략자들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적들은 최춘명 장군과 성의 내시(성의 내부를 맡아보는 관리) 이백전을 잡아다 항복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장군의 억센 투지를 꺾을 수 없었다. 화가 난 살례탑은 최춘명 장군에게 너는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백전이 한 걸음 나서며 그는 자주부사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심중한 낯빛을 지은 살례탑은 잠시동안 생각을 굴리더니 “너는 나에게 굴복하지 않은 이 나라의 충신이다. 남의 나라 충신을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하고 말하면서 물러갔다.

그 후 조정에서는 외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굳세게 싸운 최춘명 장군의 공로를 평가하여 그를 추밀부사로 임명하였다. 최춘명 장군이 죽은 후 자모산성 앞에 그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장군무덤이라고 불렀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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