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명사터

조선향토대백과 인문지리정보관 : 문화 · 예술

속명사터

[ 續命寺- ]

분류 인문지리정보관>문화 · 예술>고적 · 사적 · 광장>고적>터
행정구역 황해북도>서흥군>고성리

황해북도 서흥군 고성리 소재지 서쪽 오운산에 있는 옛 사찰터. 속명사는 511년 4월에 고구려의 이름난 스님인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이라 한다. 당시의 사찰 이름은 단풍나무가 무성한 곳에 있는 사찰이라는 뜻에서 "홍풍사(紅楓寺)"라 하였다 한다. 이 사찰은 고구려시기에는 상당히 번창했는데 그 후에 쇠퇴해져 겨우 잔존해 왔다.

절의 이름이 "속명사"로 고쳐지고 중축하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고려왕실을 뒤엎고 배신적으로 왕권을 탈취한 이성계는 재상이었던 조반(실지 이름은 한상질)을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데 대하여 통보하고 곁달아 자기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전하였는데, 명나라 황제는 이성계의 배신행위에 격분을 금치 못하고 조반의 목을 당장 치라고 명하였다. 그리하여 조반은 세 번이나 형틀에 묶여 목이 잘릴 뻔 하였는데 그때마다 공교롭게 일이 번져져 겨우 위기를 모면하였다.

한편 한 나라의 사신을 죽인다는 것은 나라 사이의 큰 일이라 은근히 걱정스러웠던 명황제는 우방국이 되자는 약속을 부탁하며 조반을 살려보내라고 하였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조반은 서울로 돌아오던 도중에 옥곡(지금의 대형산성아래마을~옛 읍터)에 이르러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꿈에 세 명의 스님이 나타나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오운산의 돌부처이다. 이번에 명나라 황제가 당신의 목을 베려다가 끝내 뜻을 못 이룬 것은 우리들이 당신을 대신하여 목을 잘렸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오운산 바위 아래에 있는데 밤낮 비바람을 맞고 있고 떨어진 머리는 땅 위에 굴러다니고 있다. 그러니 당신은 우리들의 머리를 진흙으로 이어 붙이고 절을 세워 안치하라!”고 말하고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놀라서 깨어난 조반은 즉시에 오운산에 올라보니 과연 머리가 떨어진 돌부처 3개가 바위 아래에 있었다. 그는 서울에 이르자 자기의 꿈 이야기를 조정에 아뢰고 이곳에 사찰을 중축할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이곳에 크게 절을 짓고 머리 떨어진 돌부처를 안치하게 되었으며 절이름은 목숨을 잇게 해주었다는 뜻에서 이을 "속(續)" 자와 목숨 "명(命)", 절 "사(寺)" 자를 따서 속명사라 지었다. 조선 전 기간 속명사는 조선의 왕운을 비는 절로 되어 있었으며, 1884년에 다시 왕실비용으로 크게 보수되었다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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