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고
[ 朔鼓 ]
- 요약
아악기(雅樂器)의 하나. 일명 삭비(朔鼙)·비고.
북의 일종으로 혁부(革部) 또는 혁명악기(革鳴樂器, membranophone)에 드는 삭고의 그림은 『세종실록』 권132에 나오고, 도설은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권6에 나온다. 그러나 1116년(예종 11) 고려에 들어온 대성아악(大晟雅樂)의 헌가악기(軒架樂器) 중 하나인 비고가 조선시대의 삭고와 같은 북으로 간주되고 있다.
세종(1418~1450) 때 건고 등과 함께 제조된 삭고는 응고(應鼓) 등과 함께 회례연(會禮宴)에서 연주됐다. 언제나 건고(建鼓)의 서쪽에 놓인 삭고는 건고의 동쪽에 위치한 응고와 한 짝을 이루었다. 『악학궤범』 권2에 의하면, 조회와 연향 때 삭고는 합주가 시작되기 전에만 꼭 한번 연주됐다.
『악학궤범』 당시 삭고의 몸통은 술통처럼 생겼다. 그 길이는 2척(尺) 6촌(寸) 3푼(分)이었고, 양쪽 가죽의 지름은 1척 4촌 4푼이어서 응고보다 조금 크다. 삭고의 틀은 두 십자형(十字形) 호랑이 조각의 받침대에 꽂혀 있는 나무틀 꼭대기의 양쪽이 봉황새의 머리로 장식됐다. 나무통의 중앙에 화광(火光)의 장식이 있고, 그 아래의 횡목(橫木) 중앙에 달린 고리에 북이 매달려 있다.
『악학궤범』 권6 소재 삭고
『한국악기』 소재 현행 삭고(국립국악원 제공)
조선초기 삭고는 오례의전정헌가(五禮儀殿庭軒架)에, 세종 때 회례연(會禮宴)의 헌가에, 그리고 성종(1469~1494) 때 전정헌가(殿庭軒架)에 배열된 악기의 하나이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궁중잔치에서 삭고는 대금·피리·당적·퉁소·해금 등과 함께 연주됐음이 여러 의궤(儀軌)에 전한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삭고는 6·25전쟁 때 없어졌고, 국립국악원에 전시된 삭고는 다시 제조된 것이다.
조선후기 의궤에 나오는 장악원(掌樂院)의 삭고차비 일람표
서기(임금) | 잔치명 | 삭고차비(朔鼓差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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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순조 27) |
진작(進爵) |
유계득(劉繼得) |
1829년(순조 29) |
진찬(進饌) |
유계득(劉繼得) |
1848년(헌종 14) |
진찬 |
박의영(朴義永) |
1868년(고종 5) |
내진찬(內進饌) |
이득관(李得寬) |
1873년(고종 10) |
진작 |
서순철(徐淳哲) |
1877년(고종 14) |
진찬 |
김종태(金宗兌) |
1887년(고종 24) |
진찬 |
박오흥(朴五興) |
1901년(광무 5) 5월 |
진찬 |
김삼용(金三用) |
1901년(광무 5) 7월 |
진연(進宴) |
고덕준(高德俊) |
1902년(광무 6) 11월 |
진연 |
이종문(李宗文) |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109~111쪽
- 『의궤 속의 우리 춤과 음악을 찾아서』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08년, 196, 347, 545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160~61쪽
- 『韓國樂器』 송혜진 글 강운구 사진, 서울: 열화당, 2001년, 3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