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무당

[ 巫堂 ]

요약 민간 무속신앙(巫俗信仰)의 여자 사제자(司祭者). 일명 무녀(巫女)·현수(絃首)·공창(空唱)·국무(國巫)·미지·사니.

샤머니즘(Shamanism)의 사제자처럼 귀신을 섬기며 길흉(吉凶)을 점치는 여자가 무당이다. 무당은 남자 무당인 박수와 명칭 상으로 구분된다. 본래 신(神)이 내린 여자를 무(巫)라고 불렀고, 신 내린 남자를 격(覡)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무당이 무녀·공창·국무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 무당은 두 갈래로 구분된다. 하나는 신이 내려야만 무당이 될 수 있는 강신무(降神巫)이고, 다른 하나는 강신하지는 않았지만 무업(巫業)을 전승받아 굿을 행하는 세습무(世襲巫)이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세습무를 미지 또는 사니라고 부르고 있다.

굿판에서 무당은 잽이의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무당의 노래나 주문을 무가라고 한다. 예로부터 무당은 여러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무업을 전승해 왔다. 사제적(司祭的)·의무적(醫巫的)·예언적(豫言的)·오락적 기능이 그것이다. 특히 무당의 오락적 기능은 전통공연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신윤복의 무녀도(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의 무녀도(간송미술관 소장)

전라도 단골무당과 악사(『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전라도 단골무당과 악사(『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고려시대 팔관회(八關會)의 사선악부(四仙樂部)나 나례(儺禮) 때의 가무백희(歌舞百戲)는 그 당시 예능활동에 큰 몫을 차지했다. 조선시대에도 여러 공연예술의 형태로 계속됐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 무당과 무부(巫夫)인 광대(廣大)들은 판소리시나위 같은 민간예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2.792쪽
  •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2011년, 118쪽

참조어

국무(國巫), 무녀(舞女), 무인(巫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