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관회

팔관회

[ 八關會 ]

요약 고려 때 불교의식(佛敎儀式)의 한 가지.

신라 진흥왕(540~576) 때 기원한 팔관회는 나라와 왕실의 안녕(安寧)과 번영(繁榮)을 기원하던 국가적 규모의 불사(佛事)였다. 본래 신라 화랑의 국선(國仙)이 가무백희로 용신(龍神)을 즐겁게 하여 복을 비는 의식이었다. 신라의 팔관회 때 공연된 가무백희에는 반드시 (四仙樂部)가 포함됐고, 가무백희의 공연을 국선이 거행하였다. 남석행(南石行)·술랑(述郞)·영랑(永郞)·안상(安詳), 이상 네 국선에서 유래된 사선악부의 가무백희는 고려 초기만 해도 잘 전승됐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팔관회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고려 때 팔관회는 (燃燈會)와 함께 국가적 규모의 불교의식이 됐다. 신라의 선풍(仙風)인 사선악부가 고려 초기에 부활됐으나, 차츰 쇠퇴하여 성종(981~997) 때 사선악부의 지위는 잡기(雜技)로 떨어졌다. 그 이후 국선 대신에 양반의 자제인 세속인(世俗人)이 판관회 의식을 진행하였다.

팔관회는 중동(仲冬: 11월 15일)에 왕경(王京)인 개경(開京)에서 열렸고, 맹동(孟冬: 12월)에 (西京)에서 거행됐다. 불교적인 색채는 차츰 없어졌고, 천령(天靈)·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 등 토속신(土俗神)에게 지내는 의식으로 바뀌었다.

팔관회의 예식(禮式)은 소회일(小會日)과 대회일(大會日)로 구분됐다. 소회일에는 왕이 법왕사(法王寺)에 가는 것이 통례(通例)였고, 혹은 궁중의 의봉루(儀鳳樓)나 위봉루(威鳳樓) 또는 신봉루(神鳳樓)에서 하례(賀禮)를 받고 이어 군신의 헌수(獻壽)와 지방관(地方官)의 축하선물의 봉정(奉呈) 및 가무백희가 연행됐다. 대회일에도 역시 헌수와 축하를 받았고, 외국사신의 (朝賀)를 받았다. 팔관회를 기회로 외국과의 무역(貿易)도 이루어졌다.

고려왕조 500년을 통하여 팔관회는 국가 최고의식으로 계속됐으나, 조선왕조의 건국 이후 배불정책(排佛政策)에 따라서 철폐됐다. 고려 때 팔관회의 외형은 불교적 법회(法會)의 일종이었다. 그 내용은 전통적인 무교(巫敎)의 흐름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6.2259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157~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