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사

법왕사

분류 문학 > 종교 > 불교

기본정보

고려 태조 2년(919)에 세워졌으며 개성 안에 위치하였다. 팔관회(八關會)가 행해졌다.

일반정보

고려 태조 왕건이 919년 개경에 도읍하면서 세운 10사(寺) 가운데 하나로 팔관회가 행해졌다.

전문정보

고려 태조 왕건이 불력(佛力)으로 창업(創業)의 뜻을 이루고자 개경에 도읍하면서 세운 10사(寺) 가운데 하나로 태조 2년(919)에 개성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 개성부(開城府) 하(下)조에 따르면 “법왕사(法王寺) 옛터는 연경궁 동쪽에 있다.(古基在延慶東)”고 하였다. 또한 『高麗史(고려사)』 지리지(地理志) 현종(顯宗) 15년(1024) 경성(京城)에 5부방리(部方里)를 정하고 있는데 그 중 북부방(北部坊)에 법왕, 자운, 왕륜 사내방(舍乃坊)이 있는데 이를 방명(坊名)이 모두 10사(寺의) 이름과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들 사원이 위치한 곳을 중심으로 방(坊)을 갈랐던 것을 알 수 있다.

태조는 개경 내외에 많은 사찰을 세우고 있는데, 태조 2년(919)에 법왕 ․ 왕륜 등 10사를 도성 안에 처음 창건하였다. 이것은 도읍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것과 아울러 태조 자신이 불법의 수호자임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한기문, 1998)

법왕사는 화엄종 승려 균여(均如)가 광종 13년(962)에 이곳에서 화엄경을 강론하였고, 고려말 권근(權近)이 남긴 법왕사조사당기(法王寺祖師堂記)에 의해, 절 서쪽에 위치한 조사당에 비로자나불 삼존 화상과 화엄존사들의 진영이 걸려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고려 말까지 화엄종 소속이었을 것이다.(안지원, 2005)

법왕사에서는 주로 팔관회가 행해졌다. 고려시대의 팔관회는 대내(大內)와 사원에서 행하여 졌는데 그 사원은 법왕사에서 행하였다. 이것은 신라의 황룡사(皇龍寺)가 호국의 사찰로서 그곳에서 팔관회를 연 것과 서로 통한다. 또한 법왕은 “불법(佛法)의 왕(王)”과 “정법(正法)으로 통치하는 국왕(國王)”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팔관회의 법왕사 행향은 불법의 왕인 부처님을 상징하고 있는 법왕사로 국왕이 행차하여, 법왕과 국왕을 동일시하려고 했던 태조의 왕즉불(王卽佛) 사상을 재확인하는 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적 불교의례로서의 팔관회의 성격을 뚜렷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안지원, 2005)

또한 법왕사가 호국의 사찰임을 나타내는 것은 법왕사에서 호국법회인 백좌도량(百座道場)이 수 차례 행하여지고 있음과 고종 12년(1225)에 법왕사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있는 것에서 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천도한 해에도 팔관회를 행하였고 이어 법왕사로 행향(行香)하고 있는데, 환도하기까지 팔관회가 9차례 행해졌고 팔관회를 행한 이후에는 반드시 법왕사로 행차하고 있다. 이로써 강화도에서 법왕사를 따로 짓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법왕사가 왕실과 팔관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한기문, 1998)

참고문헌

허흥식, 1986, 『高麗佛敎史硏究』, 일조각.
한기문 1998, 『고려사원의 구조와 기능』, 민족사.
안지원, 2005, 『고려의 국가 불교의례와 문화』, 서울대학교 출판부

관련원문 및 해석

太祖[戊寅六月裔死 太祖卽位于鐵原京 己卯 移都松岳郡 是年 創法王 慈雲 王輪 內帝釋 舍那
又創天禪院 [卽普<濟>] 新興 文殊 (靈)通 地藏 前十大寺皆是年所創 庚辰 乳岩下立油市 故今俗利市云乳下 十月創大興寺 或系壬午 壬午 又創日月寺 或系辛寺 甲申 創外帝釋 新衆院 興國寺 丁亥 創妙寺 己丑 創龜山 庚寅安] 丙申統三
태조[무인년(918) 6월에 죽으니 태조가 철원경에서 즉위하였다. 기묘년(919)에 도읍을 송악군으로 옮겼다. 이 해에 법왕·자운·왕륜·내제석·사나 등의 절을 세우고 또 천선원[곧 보제]·신흥·문수·영통·지장 등의 절을 세웠으니 앞의 10대 사찰은 모두 이 해에 창건되었다. 경진년(920)에 유암 아래에 유시를 설치하였다. 이 때문에 지금 항간에서는 시장에서 이익을 얻는 것을 유하라고 한다. 10월에 대흥사를 세우니 또는 임오년(922)의 일이라고도 한다. 임오년(922)에 또 일월사를 세우니 또는 신사년(921)의 일이라고도 한다. 갑신년(924)에 외제석·신중원·흥국사를 세우고, 정해년(927)에는 묘사를 기축년(929)에 귀산사를 세웠으며 경인년(930)에 안(이하미상)] 병신년(936)에 삼국을 통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