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리 사신총

호남리 사신총

[ 平壤 湖南里 四神塚 ]

지역 평양
湖南里 四神塚

湖南里 四神塚

평양 삼석구역 성문리(舊地名 : 평남 대동군 시족면 호남리) 대성산 기슭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1916년 개마총과 함께 조사되었다. 고분 주위에는 크고 작은 고분들이 산재되어 있으며, 벽화고분으로는 서쪽에 고산리 1·9호, 동쪽에 남경리 벽화고분, 내리 1호분 등이 있다.

분구(墳丘)는 광대산의 남쪽 경사면 일부를 파고 만들었다. 분구(墳丘)는 돌로 기단(基壇)을 쌓은 후 흙을 덮은 방대형(方臺形)기단 봉토분구이다. 분구의 한 변은 20m, 높이 4m이다. 기단 주위에 3m 정도 폭으로 돌을 깔았다. 분구의 기저에 돌기단을 축조한 예는 동명왕릉과 진파리 10호분 등에서도 보이지만 벽화고분에서는 흔하지 않은 형식이다.

봉토 내부의 널방(玄室)은 남향이고, 널길(羨道)과 널방을 갖춘 외방무덤(單室墓)이다. 널길은 널방 중앙에 위치하며, 길이와 폭 모두 2.5m이고 높이는 1.3m이다. 지상에 설치한 널방은 하얀 대리석을 정교하게 쌓아 축조하였고, 석재 사이에는 백회를 발라 마감하였다. 벽화고분에서 대리석을 사용한 유일한 예이다. 널길은 널방 남벽 중앙에 위치하며, 길이 약 2.5m, 폭 약 1.3m이다. 널방은 장축이 동~서 방향이며, 긴 장방형으로 3.1×3.6m 규모이다. 천장은 2단의 평행고임 위에 삼각고임을 얹은 평행삼각고임식으로 개마총과 같은 구조이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는 약 2.9m이다. 일찍이 도굴되어 널방 내부에서는 약간의 금동 금구 잔편과 금도금된 관못(棺釘) 2점이 수습되었다.

벽화는 대리석에 직접 그렸는데 4벽에 사신을 그렸고, 천장에는 벽화를 그리지 않았으며, 사신 이외에 다른 벽화나 장식무늬는 보이지 않는다. 사신도(四神圖)는 아랫부분이 침수 피해를 입어 희미하지만 윗부분은 명확하다. 먹선과 녹색, 청색, 주색, 황색 등으로 밝고 화사하게 채색하였는데 이는 강서대묘와 같은 후기 벽화의 수법이다. 그러면서도 자세나 표정이 다른 고분벽화의 사신도와는 다소 색다르다. 청룡(靑龍)과 백호(白虎)는 몸이 입구 쪽을 향하고 머리는 뒤로 젖혀진 모습이다. 이렇게 머리를 뒤로 젖힌 자세는 고산리 1호분의 백호도를 제외하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청룡의 특징인 뿔이 하나인데, 후기의 사신도에 보이는 쌍각의 청룡과는 다르며 오히려 무용총 등의 5세기 청룡도와 같은 형태이다. 이처럼 사신도는 힘차기는 하지만 고졸(古拙)한 맛이 남아 있어 전기 양식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후기 사신도의 전형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 高句麗古墳壁畵(이태호·유홍준, 1995년)
  • 韓國美術史硏究(金元龍, 1987년)
  • 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墳墓及繪畵(關野貞, 朝鮮の建築と藝術, 岩波書店, 194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