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소불묘

풍소불묘

[ 北票 馮素弗墓 ]

풍소불묘(北票 馮素弗墓)

풍소불묘(北票 馮素弗墓)

中國 遼寧省 北票縣 西官營子村 將軍山 산록에 자리 잡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의 고분으로, 북연(北燕)의 귀족인 풍소불(馮素弗) 부부묘(夫婦墓)로 알려져 있다. 풍소불은 진서(晋書)의 기재대로 북연의 왕 풍발(馮跋)의 아우인데 태평 칠년(太平 7年)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4개의 금(金) 혹은 금동인장(金銅印章)에 새겨진 ‘遼西公章’ 혹은 ‘車騎大將軍’ 등의 명문으로 보아 풍소불(馮素弗)의 무덤임을 알 수 있었다.

2개의 무덤구덩이(墓壙)가 동일 봉토 내에서 서로 약 20m쯤 떨어져 위치하는데 2개의 무덤구덩이는 각각 하나씩의 장방형 돌덧널(長方形石槨)이 설치되었다. 돌덧널은 큰 깬돌(割石)로 축조하고 두터운 장대석으로 천장을 덮었다. 남자무덤(夫墓)을 보면 장방형으로 굴착된 무덤구덩이 서편에 감실(龕室)을 두고 그 안에는 도기를 매납하였다. 돌덧널은 길이 4.25m에 너비 1.5m정도 되며, 그 내벽과 천장에는 석회를 바르고 성진(星辰), 인물(人物), 건물(建物) 등을 주제로 벽화를 그렸다. 덧널 내에는 주칠(朱漆)을 하고 우인(羽人), 운문(雲文) 등이 그려진 나무널(畵棺)이 안치되어 있다.

무덤 안에서는 약 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의장기(儀裝器)로서 금동제간두식(金銅製竿頭飾)과 금동장(金銅裝)의 발걸이, 갑옷과 투구(甲胄)와 말갑옷(馬甲) 등을 비롯하여 각종 청동용기(靑銅容器)와 벼루, 연적 등의 문구류도 출토되었다. 그밖에 꽤 고급의 로만글라스(Roman glass)도 출토되었는데 그 중 압형수주(鴨形水注)나 유리배(琉璃杯) 등은 특징적이다.

부인무덤(婦人墓)은 일찍이 도굴되었는데 돌덧널 내벽에는 다수의 시녀가 묘사된 벽화가 그려졌다. 남겨진 부장품으로 의장기(儀裝器)를 비롯하여 아주 독특한 형태의 수목형(樹木形)의 금제관식(金製冠飾)이 나왔고 청동용기도 출토되었다. 그리고 주목되는 것은 완전한 2개체분의 개뼈가 나온 것이다. 이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개가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선비족(鮮卑族)의 믿음과 관련이 있는 매장의례라고 할 수 있다.

이 풍소불묘는 1965년도 요령성박물관에서 발굴했는데, 발굴성과가 보고되자마자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 고분 연구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이 고분에서 출토된 금공품(金工品)이나 마구류(馬具類) 및 무기류 등이 동북아 고분문화의 본류로 여겨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415년이라는 풍소불묘의 실연대는 당시 절대연대의 근거가 거의 마련되지 않았던 신라·가야(新羅·伽耶)의 고분과 그 출토유물의 상한연대를 알려주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자루가 짧은 목심금속피(木芯金屬皮)의 발걸이와 같은 것이었는데 신라·가야지역의 경주 황남동 109호분 3·4곽과 부산 복천동 10·11호분 등 비슷한 형식의 발걸이가 출토된 고분의 상한연대를 결정하는 데 참고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遼寧北票西官營子北燕馮素弗墓(黎瑤渤, 文物 1973-8, 1973년)
  • 北燕·馮素弗墓の提起すゐ問題-日本·朝鮮考古學との關聯性(穴澤和光,·馬目純一, 考古學ジャナル 85號, 19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