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리 고분

탑리 고분

[ 義城 塔里 古墳 ]

지역 의성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의 서편에는 산성이 있는 금성산(해발 516m)이 솟아 있다. 이 산에서 서측으로 뻗는 구릉은 금성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미천에 의해 형성된 평야를 만나며 나지막하고 긴 구릉이 되는데 여기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들을 탑리 고분군이라 한다. 고분들은 행정구역상으로 탑리(塔里), 대리(大里), 학미리(鶴尾里)에 걸쳐 분포하고 있어 탑리 고분군, 대리 고분군, 학미리 고분군으로 나뉘어 불리기도 하나 크게 보면 하나의 고분군이다. 고분군에는 봉토가 확인되는 고분만도 탑리에서 130여 기, 대리에서 36기, 학미리에서 29기로, 봉토가 남아 있지 않은 소형묘들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봉토분들은 작은 것들도 있으나 저경이 20m 이상의 거대한 것들도 상당히 많다. 고분군 가운데 탑리의 서측 제일 정상부에 위치한 가장 큰 봉토분이 1960년 국립박물관에 의해서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된 고분의 봉토는 남북으로 약간 긴 타원형으로 장축의 저경이 26m, 단축의 저경이 20m, 높이 4.6m 정도였다. 고분은 하나의 봉토 안에 5기의 덧널(槨)을 배치한 여러사람무덤(多葬墳)이었다. 이 고분의 축조상태를 보면 먼저 저경 16m정도의 둘레돌(護石)을 가진 남~북 장축의 Ⅰ덧널(墓槨)이 중심이 된 원형분을 구축한 다음, 이것의 북편 둘레돌을 걷어내고 여기에 동~서 장축의 Ⅱ덧널을 Ⅰ덧널과 방향이 엇갈린 ‘T’자상이 되게 구축하고 봉토를 연결하여 커다란 봉분을 가진 두사람무덤(兩葬墳)이 되게 한 다음, 다시 그 봉토에 Ⅲ·Ⅳ·Ⅴ덧널을 축조한 것이다. 따라서 봉토를 구축한 주된 무덤은 Ⅰ덧널과 Ⅱ덧널이며 나머지는 완성된 봉토에 추가장한 것이다.

발견된 덧널은 모두 지상에 구축한 변형돌무지덧널무덤(變形積石木槨墓)으로 볼 수 있는 것들로, 나무덧널(木槨)을 놓고 사방에 돌을 쌓아 덧널을 고정한 다음 봉토를 쌓은 것이다. 주된 덧널인 Ⅰ덧널의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가 3.5×1.7×1.8m, Ⅱ덧널의 크기는 3.9×1.5×1.5m 정도였다. 나머지 3개의 덧널들은 이들 보다는 작은 것들이다. 덧널의 바닥에는 모두 자갈을 깔았다. 이외에 봉토의 내부 구획된 범위를 가진 유구에서 부장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또다른 덧널로 보아 이 고분에는 모두 6기의 덧널이 구축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출토유물로는 우모형입식(羽毛形立飾)의 금동관, 금동제관식(金銅製冠飾), 금제귀고리(金製耳飾), 금제드리개(金製垂飾), 은제허리띠(銀製銙帶), 금동제신발(金銅製飾履)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각종 철제무기류, 마구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또 Ⅰ덧널과 Ⅲ덧널에서는 주피장자 이외에 주피장자와는 두향(頭向)을 반대로 한 순장자의 인골들이 각각 1구씩 발견되었다. 출토유물은 경주를 제외한 신라의 지방고총들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서는 최상급으로, 이 고분의 피장자들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며 의성지역에 있었다고 믿어지는 소문국(召文國)의 최고지배집단이었음을 알려준다.

한편 이 고분군의 한 부분인 대리에 위치한 대형봉토분인 대리 5호분과 대리 3호분이 1965년과 1995년에 각각 경희대학교박물관과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서 발굴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대리 3호분은 하나의 봉토 안에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1기와 탑리 고분의 덧널들과 같은 변형돌무지덧널무덤 1기가 순차적으로 축조되어 있었다. 여기에서도 화려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러한 점과 지금까지 출토되거나 지표조사에서 수집된 유물들로 보아 탑리 고분군은 4세기부터 6세기까지, 그들의 독특한 묘제인 변형돌무지덧널무덤을 위주로 축조된 대형고분군이고, 의성지역의 중심고분군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義城大里 3號墳 發掘調査槪要(朴貞花, 제2회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발표회,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1995년)
  • 義城塔里古墳(國立博物館, 196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