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석

서태석

[ 徐邰晳 ]

요약 항일농민운동가. 암태도소작인회,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조선공산당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서 소작쟁의를 주도하였으며 사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85.6.17 ~ 1943
국적 한국
활동분야 농민운동
출생지 전남 신안
주요수상 건국훈장 애국장(2003)

1885년 6월 17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岩泰島)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의학을 공부한 뒤 한약방을 열어 일대에서 명의로 알려졌으며, 1907년부터 8년 동안 암태면장을 지냈다. 1920년 목포에서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유인물을 뿌리다가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출감 후 1922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이후 귀향하였다. 1923년 9월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서 소작료 인하를 둘러싸고 일어난 암태도소작쟁의를 지도하였으며, 그해 12월에 암태도소작인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4년 4월 조선노동총동맹 결성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되었으나 9월 암태도소작쟁의 배후 조종자로 검거되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27년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전진회(前進會)가 각 부문의 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결성한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서기가 되었으며, 같은해 조선공산당에 입당한 뒤 9월에 조선농민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1927년 12월 춘경원당(春景園黨:서울 춘경원에서 결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 일명 비정통파 조선공산당) 선전부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4월 박형병(朴衡秉)·이병의(李丙儀)·오상철(吳相哲)·홍기순(洪淳起)·김경태(金京泰) 등과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943년 고문후유증으로 조현병(정신분열병)에 걸려 결국 고향에서 사망하였다.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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