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 유적

부여 관북리 유적

[ Archaeological Site in Gwanbuk-ri, Buyeo , 扶餘 官北里 遺蹟 ]

요약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백제 때의 유적지. 2001년 2월 5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부여 관북리 유적

부여 관북리 유적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2001년 2월 5일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33번지 외
시대 백제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역사유물
크기 면적 95,048㎡

1983년 9월 29일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관북리 725번지 일대를 포함하여 184필지 9만 5048㎡를 2001년 2월 5일 사적으로 변경하였다.

관북리 일대는 백제의 왕궁터와 고려·조선시대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왕궁터는 부여 부소산성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부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입지조건으로 보아 백제왕궁지로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궁터의 범위는, 동쪽은 부여여자고등학교 앞 동쪽의 쌍북리 와요지, 서쪽은 부여문화유산연구소, 남쪽은 논산 방면의 길가, 북쪽은 부소산 남쪽 기슭을 한계선으로 추정된다.

왕궁터에서는 건물터·도로·하수구·연못·석축시설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현재 부여여자고등학교에는 임금이 마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백제의 어정(御井)인 팔각정이 있다.

연못은 직사각형의 활석으로 쌓았으며 남북길이 약 6m, 깊이 약 1m이고 이곳에서 연꽃무늬 수막새, 토기, 금동제 귀고리, 등잔, 개원통보, 대바구니, 목간(木簡) 등의 다양한 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 특히 나무패에 글씨를 쓴 목간은 백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된 것이다.

연못 동쪽에는 양쪽에 배수로가 설치된 도로망이 발견되었고 여기에서도 연꽃무늬 수막새 등 많은 토기와 기와가 발견되었다. 이밖에도 기와로 쌓은 건물 기단과 약 80㎝ 높이의 석축시설이 확인되었다.

부여문화유산연구소 앞쪽에 있는 민가에는 백제 때의 사각형 및 둥근 모양의 주춧돌·지대석·판석 등의 석재가 흩어져 있으며,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부여 석조도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인데, 당시 궁궐에서 연꽃을 심었던 그릇이라고 전해진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곳이니만큼 학술적 의미가 크다.

참조항목

부여군, 부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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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관북리 유적 충남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에 있는 백제의 유적지 사적 제428호 관북리 일대는 백제의 도읍지인 사비성의 왕궁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기와조각과 목간, 금동 귀고리 등이 발견되어 2001년 2월 5일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왕궁터는 부여 부소산성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부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입지조건으로 보아 백제왕궁지로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궁터에서는 건물의 주춧돌과 지대석, 판석이 남아있고 도로, 하수구, 석축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백제 왕가의 우물인 팔각정이 남아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