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헌공 윤전 사우

충헌공 윤전 사우

[ 忠憲公 尹烇 祠宇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윤전을 제향하는 사당.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충헌공 윤전 사우

충헌공 윤전 사우

지정종목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6년 11월 19일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333번지에 있다. 《순조실록》 7년(1807)에 따르면 유생들의 상소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사람들은 모두 은혜를 입었으니 마땅히 부조를 허락해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윤전 사우의 전신인 부조묘가 건립되었다.

1858년에 간행된 《공산지》에 윤전의 사우가 곡화천면에 있다고 기록되었다. 곡화천면은 현재의 부여군 초촌면 일대로 윤전의 아들 윤원거(尹元擧:1601~1672)의 후손들이 살았던 곳이다. 위의 기록으로 보아 윤전 사우는 1807년부터 부여에 부조묘 형식으로 있었으며, 1920년대 초 윤전의 처와 아들 윤원거의 묘소가 있는 유평리에 사당과 종가를 마련할 때 옮긴 것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평 19.8㎡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이다. 전면에는 일각문이 있으며, 주위에 장이 설치되어 있다. 자연석 기단에 삼문과 담장을 설치하였고,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며, 지붕 양측면에 풍판을 달았다.

윤전(1575~1636)은 1610년(광해군 2)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615년 호조좌랑으로 대북파(大北派)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인조반정 때 경기도도사로 복직하였으며,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를 공주(公州)로 호종하고 공조정랑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였다.

1633년 종묘서령(宗廟署令)·장령(掌令)을 지내고, 1636년 병자호란 때 필선(弼善)으로, 강화도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1657년(효종 8) 도승지에 추증되었으며, 1702년(숙종 28) 이조판서가 가증되었다. 강화의 충렬사와 연산의 구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역참조항목

윤원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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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공 윤전 사우 조선 중기의 문신 윤전을 제향하는 사당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6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평 19.8㎡으로 비교적 작은 규모이다. 전면에는 일각문이 있으며, 주위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순조실록》 7년(1807)에 따르면 유생들의 상소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사람들은 모두 은혜를 입었으니 마땅히 부조를 허락해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윤전 사우의 전신인 부조묘가 건립되었다. 윤전(1575~1636)은 1610년(광해군 2)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는데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를 공주로 호종하고 공조정랑이 되었고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전사하였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