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고산리 유적

제주 고산리 유적

[ Archaeological Site in Gosan-ri, Jeju , 濟州 高山里 遺蹟 ]

요약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차귀관광지구 안에 있는 유적. 1998년 12월 23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제주 고산리 유적

제주 고산리 유적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1998년 12월 23일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28번지
시대 후기구석기시대 ~ 초기신석기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선사유물
크기 면적 99,121㎡

1998년 12월 23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박화춘 등이 소유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신석기시대 유적을 대표한다. 고산리 자구내 마을 서쪽 어귀에서 수월봉 바로 앞에 이르는 해안단구에 있으며, 면적이 99,121㎡에 이른다. 유물 분포지역이 대부분 경작지이기 때문에 트랙터, 경운기 등 농기계의 사용으로 유물 포함층이 불안정한 상태이다.

일부 유물은 1977년 경지정리사업 때 유물층이 교란된 상태로 경작지에서 발견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석기 99,000여 점(성형 석기 5,000여 점, 박편 94,000여 점)과 토기 조각 1,000여 점이 있는데, 제주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BC6000년경의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이 구석기 말기와 신석기 초기를 연결하는 자료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써 한반도에 신·구석기시대가 존재했었다는 근거를 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본·시베리아·연해지방 등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초기 유물과 같은, BC 12000∼10000년경의 눌러떼기 수법으로 만든 석기와 섬유질 토기가 이 유적에서 다량 출토되어 한반도에서도 구·신석기시대가 자연스럽게 연결됨을 입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유적은 시베리아, 연해주, 만주, 일본, 한반도 일대를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초기 문화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하며, 한국의 신석기 초기 문화의 형성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고산리 주민들은 구석기 후기 말엽 수렵·채집 집단의 석기 제작 전통을 계승하고, 초보적인 형태의 토기를 생산하여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서 출토된 석기는 석재를 기초 원석으로 직접 타격에 의해 박편을 제작한 후 간접 타격 혹은 눌러떼기로 2차 가공하여 제작한 것이다.

토기는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 토기 조각,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조각 등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원시형 적갈색 섬유질 토기는 ‘고산리식 토기’라고 불릴 수 있는, 한반도에서 특징적인 유일한 토기 형식이다.

덧무늬토기는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 부산 동삼동 패총, 일본의 쓰시마 등지에서 출토된 기하학적 태선 덧무늬토기 형식인데, 옆면이 굴곡이 있는 선으로 표현되었다. 이것과 모양이 유사한 형식은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에서, 무늬가 유사한 토기는 동삼동 패총의 최하층에서 확인되었다.

참조항목

한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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