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미동

진미동

[ Jinmi-dong , 眞美洞 ]

요약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동.
진미동

진미동

위치 경북 구미시
면적(㎢) 8.71㎢
문화재 인동향교 대성전(경북문화재자료 20), 동락서원 강당(경북문화재자료 21), 인동입석(경북문화재자료 184)
인구(명) 2만 2170명(2008)

면적 8.71㎢, 인구 2만 2170명(2008)이다. 동쪽은 인동동, 서쪽은 공단동, 남쪽은 칠곡군, 북쪽은 양포동에 접해 있다.

진미동은 1978년에 구미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칠곡군 지역에 있던 진평동(眞坪洞)·시미동(侍美洞)·임수동(臨洙洞)을 통합하여 만든 동이다.

행정동인 진미동은 법정동인 진평동·시미동·임수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평동의 유래는 신라 진평왕이 이곳을 지나다가 천생산(天生山)의 생김새를 보고 이곳에서 3일간 묵으며 사냥을 한 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바깥장터라고 부르는 곳은 조선 선조 때 인동(仁同)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고 난 뒤, 주민 수가 늘어나자 관아가 있는 인동을 읍내라고 하였고, 5일장이 서게 되었다. 그후 읍내와 거리가 먼 곳에 새로 장터가 생기면서 이곳을 바깥장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시미동은 조선 명종 때 가선대부(嘉善大夫) 벼슬을 지내던 김광휘(金光輝)가 이곳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아버지가 죽자 3년간 시묘(侍墓)를 한 데서 그 후손들이 시미골이라고 부르다가 고종 때에 시미동으로 되었다.

임수동은 낙동강변에 인접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옛 지명인 갓등은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구릉의 모양이 갓을 놓아 둔 형상과 같아 부르게 된 이름이며, 삼한시대의 고분군과 나루터가 있었는데 구미대교의 개통으로 나루터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문화재로는 인동향교 대성전(仁同鄕校大成殿:경북 문화재자료 20), 동락서원 강당(東洛書院講堂:경북 문화재자료 21), 인동입석(仁同立石:경북 문화재자료 184) 등이 있다.

역참조항목

임수동, 진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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